2008년 11월 4일 새벽 1시. 조금 전에 KBS2의 <시사투나잇> 월요일 방송이 끝났다. KBS 경영진은 오는 17일 프로그램 개편에서 <시사투나잇>을 폐지하고 <시사터치 오늘>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개편하겠다고 했다. 실상 <시사투나잇>을 폐지한다는 말이다. 지난 10월 10일은 <시사투나잇>이 태어난 지 5년 되는 날이었다.





언뜻 보면 이름만 바꾸고 프로그램이 콘셉트나 제작진을 유지한다는 식으로 KBS 경영진은 말하고 있지만 KBS에서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들, 그리고 시청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11월 3일 수십 명의 PD들이 아침 출근 길에 <시사투나잇> 폐지를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했다고 한다. 성명서도 발표했다고 한다.

<사진출처 : 미디어오늘>


정권이 바뀌면 '뭔가' 바뀌는 게 있는 법이다. 군부독재 정권이 끝난 후 오랜 기간 야당이었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다. 두 대통령이 10년 동안 한국에 변화를 가져 왔다. 그리고 10년 만에 다시 야당이 여당이 되었다. 그들이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문제가 있는 것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바로잡음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수구(守舊)가 아니던가.


수구(守舊)가 무엇인가? 옛 것을 그저 지키려는 것을 말한다. 지난 10년 간 한국과 한국민과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변화한 모습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옛 것으로 회귀하려는 것을 말한다.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막고, 민심의 촛불에 저항하고, 규제의 법률을 강화하고, 못 마땅한 저널리즘의 입을 틀어 막고, 공교육을 약화시키며 사교육을 조장하고, 교과서의 공정함 대신 정통성을 위해 교과서를 고치도록 하는 이런 행태를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할 것인가? 그것이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바로잡기라면 그들을 통칭해 이렇게 부를 수 밖에 없다,

수구세력


<시사투나잇>의 실질적 폐지는 수구세력이 자신에 대해 비판하는 세력을 얼마나 두려워하며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수구세력이 바라는 것은 민주주의도 아니고 보수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정적 발전도 아니다. 그저 '과거로 회귀'가 수구세력이 바라는 바다. 그들이 원하는 과거는 "그들이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던 시절"을 말한다. 텔레비전에서 감히 권력자를 비판하지 못하고, 권력자들이 잘못을 해도 몇 번 이야기하고 넘어가던 그런 시절이다. 저널리즘과 비판 정신이 투철한 언론인이 살기 힘들던 그런 시절이다. 수구세력은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그래서 <시사투나잇>과 같은 프로그램은 당연히 사라져야할 목록 1호인 것이다. 왜냐면 <시사투나잇>은 정권을 가진 자든, 권력을 가진 자든, 돈을 가진 자든 가리지 않고 그들의 치부를 끈질기게 밝혀내려는 저널리즘을 구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수구세력은 <시사투나잇>이 노무현 정권 시절 그들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런 비판조차 노무현 정권 비호를 위한 위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시사투나잇>이 너무 질기게 자신들의 치부를 후벼 팠던 사실 뿐이다. 수구세력은 <시사투나잇>을 보며 이를 갈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 놈들 정권만 잡아봐 그냥..."

정권을 잡은 그들은 결국 KBS를 장악하고 <시사투나잇>을 없애 버리려 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보수주의자의 탈을 쓰고 있는 수구세력일 뿐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전통과 구습"의 차이점을 알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전통은 '지켜야 할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좋은 습관이나 양식'을 말한다. 반면 구습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풍습이긴 하지만 계승해서 안되고 없애야 할 것을 말한다.

<시사투나잇>의 저널리즘은 어떠한가? 수구세력은 그들의 저널리즘이 편향적이며 일방적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왜냐면 수구세력은 항상 자신들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시절을 꿈꾸며 사는 존재라 작은 비판에도 민감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수구세력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시사투나잇>은 그것조차 스스로 받아 들이려 노력했다고 이야기한다. 오늘 방송분은 그런 반성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수구세력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비난하는 존재는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구세력은 결코 보수세력이 될 수 없다. 진정한 보수는 개혁 세력과 대화하고 이해하며 타협하여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시사투나잇>의 폐지는 KBS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정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저널리즘과 자정능력을 가질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중대한 질문에 대한 도전이다.

나는 뉴라이트라는 자칭 신흥 보수주의자의 조직이 나올 때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냐?'며 맹비난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뉴라이트 따위는 해체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세상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갈등하며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갈등(藤)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가? 갈등은 파괴적 단어가 결코 아니다.

葛    칡 갈
     등나무 등


칡과 등나무과 서로 얽히듯 복잡하게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것을 '갈등'이라고 한다. 수구세력은 갈등이 위기라고 생각하여 칡과 등나무의 얽힌 것을 모두 끊어 버리려 한다. 그러나 상식적인 사람들은 갈등을 통해 칡과 등나무가 더 단단하게 세상의 기둥을 감싸 받침을 안다. 갈등이 없으면 아름답고 깨끗할 것 같지만 실상 그 사회의 저항력과 생존력과 자기 정화 능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기 마련이다

민주주의의 뿌리는 복잡하게 얽힌 갈등을 통해 더 튼튼해진다


<시사투나잇>은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이런 민주주의의 속성을 잘 이해하는 몇 안되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심지어 요즘에 와서 KBS의 시사 간판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하는 시청자들도 있다. 자정이 가까이 시작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졸린 눈 부비며 <시사투나잇>을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시사투나잇>은 지난 5년 간 시끄럽고 갈등이 많은 한국 사회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며 민주주의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시사 프로그램의 전통성을 잇기 위해 노력해 왔다. KBS가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는 것은 KBS 스스로 저널리즘의 전통성을 포기하는 행위다.


시사투나잇의 시청자로서...

이 글의 마지막은 간절한 읍소로 마무리하고 싶다. 이 읍소가 KBS 경영진일수도 있고, 성명서를 발표한 젊은 PD들일 수도 있고, 그들의 상사인 부장이나 본부장일 수도 있다. 혹은 오직 과거로 회귀하려는 보수세력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정말 간절히 부탁드린다.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는 건 KBS 저널리즘의 보석을 빼서 시궁창에 던져 버리는 행위다. KBS는 공영방송이다. 공영이 무엇인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말 아닌가?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려는 분들의 입장에서 공영의 의미는 지금 이야기하는 것과 많이 다를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시사투나잇> 같은 프로그램이 과거 정권의 이익에 편파적으로 복무했기 때문에 공영에 이바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는 대신 당신들의 요구를 더 받아 들이도록 요구하고 제안하는 게 옳지 않겠나? 그저 개편 시기에 프로그램 개편일 뿐이라며 이름 바꾸는 식으로 어설프게 폐지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 아닌가?

늦은 밤 퇴근하여 자정 뉴스나 봤던 내게 <시사투나잇>은 대한민국의 하루를 정리하여 알려 주는 훌륭한 프로그램이었다. <시사투나잇>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점점 옅어지는 30대 후반의 한 시청자에게 '그래도 당신이 관심가졌을 때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고 알려주던 프로그램이었다. 단신이나 전하는 마감 뉴스보다 몇 개의 꼭지를 심도 깊게 매일 전해 주던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채널이었다. 왜 그 채널을 없애 버리려고 하는가. 더구나 그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그리고 지금도 만들고 있는 KBS의 PD 선후배들도 한결같이 <시사투나잇>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간곡히 부탁드린다. <시사투나잇>을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그리고 몇년 후에도 계속 볼 수 있도록 해 달라. 재방송도 하지 않아 늘 '본방 사수' 밖에 할 수 없는 시청자를 위해,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이해하고 헌신하고 있는 PD와 제작진을 위해, 그리고 정말 중요한 '한국 저널리즘의 전통성'을 위해 <
시사투나잇>을 보존해 달라. 고개 숙여 부탁드린다.


시사투나잇, 지못미...

Posted 2008/10/11 04:27
 YTN 지못미.. 요즘 주변 사람들이 YTN을 보며 하는 이야기다. '지못미'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의 온라인 속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 선 이후 1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여러 번 '지못미'를 외치고 있다. 어제 방영 5주년, 1천 회를 맞은 KBS <시사투나잇>도 오래지 않아 '지못미'를 외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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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어느 날 늦은 밤,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 <시사투나잇>을 보게 되었다. 그 날 프로그램을 다 보고 난 후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 프로그램, 이명박이 그냥 내버려 둘까?"

나를 비롯한 그 자리에 있던 우리는 <시사투나잇>의 열렬한 애청자는 아니었다. 가끔 뉴스를 보지 못한 날 늦은 밤에 보곤 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그 날의 감정은 좀 남달랐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난 이후 많은 변화가 예측되던 시점이었고 하필이면 그 날 <시사투나잇>은 매우 비판적으로 정권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었다. 우리는 <시사투나잇>이 왜 이런 예민한 시점에 저런 이야기를 하는 지 궁금했고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용.감.하.다'고 자평했다.

몇 개월 후 KBS는 정연주 사장 해임건으로 복잡한 상황에 처했고 마침 그 때 촛불 집회 정국이 도래했다. 우리는 다시 매우 늦은 시각에 <시사투나잇>을 보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마치 KBS와 별 관계 없는 외주 제작사처럼 KBS 사태를 보도하고 있었다. 우리는 또 한 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들 뭘 믿고 이러지?"


2008년 10월 10일

이 날은 <시사투나잇>이 방영된 지 5년이 되는 날이고 또한 1천 회의 방영을 기념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이 날 조촐한 기념회가 있었다. 몇몇 미디어 블로거가 이 자리에 참석했고 블로그를 통해 그 소식을 알려 왔다. 한 호프집을 빌려서 행사를 한 것 같다. 행사에서 작은 공연이 있었던 것 같다. 블로그의 소식에 의하면 <시사투나잇>의 젊은 PD들이 준비한 공연이라고 한다. 음향 시설도 없이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데 참 낯익은 노래였다. 한참 듣다 비로소 이 노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1996년 서총련(서울지역대학 총학생회 연합) 노래패인 '조국과 청춘'의 5집 중 '우리는 청춘'이라는 노래였다. 아마도 이 노래를 부른 PD들은 그 시절 대학에서 이 노래를 들었을테니 30대 초반이나 그보다 어린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이 노래를 힘차게 그리고 밝게 불렀고 <시사투나잇>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도 웃음과 박수로 격려를 했다. 그러나 나는 이 노래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다. 1996년 대학 축제 공연에서 노래를 선곡할 일이 있었는데 이 노래를 추천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이 노래가 너무 유약하다고 하며 선곡을 취소했다. 발라드도 아니고 락도 아닌 것이 애매하다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나 <시사투나잇> PD들이 이 노래를 불렀고 나는 감동했다.

나는 <시사투나잇> PD들이 왜 이 노래를 선곡했는 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노래를 듣던 내 또래의 사람들과 그 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노래의 후반부에서 감동 어린 표정이 되었던 이유도 알 것 같다. 왜냐면 이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기 때문이다,

".... (전략)

세상은 내게 무릎 꿇라 하지만
난 너를 바꿔야겠어
이 길에 내가 상처입는다해도
결코 멈출거라고 생각하지마

손을 잡고 함께 싸워가면
더 아름다운 미래가 있어
비록 우리 작은 힘이지만
우리만이 할 수 있어
우리의 청춘을 걸고..."

노래를 한 사람으로써 나는 왜 그들이 이 노래를 선택했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시사투나잇>은 이명박 정권에서 가장 먼저 폐지될 프로그램으로 손꼽히고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 프로그램을 5년 동안 만들어 왔던 사람들에게 현재 상황은 '세상이 내게 무릎 꿇라 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시사투나잇>을 만드는 사람들은 오히려 '난 너를 바꾸야겠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비록 그것이 힘들겠지만 <시사투나잇> 사람들은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청춘을 걸고' 말이다.

<시사투나잇>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게 청춘을 걸만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그 노래에 화답하며 박수를 치고 환호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정말 그들이 '우리는 청춘'이라는 노랫말처럼 살고 싶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사투나잇, 지못미...

어느날 KBS2 채널을 늦은 밤 틀어 보니 <시사투나잇>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지못미...라고? 정권이 바뀌어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것 중 하나는 바른 생각으로 저널리스트의 양심으로 세상을 비판하는 것이다. <시사투나잇>이 만약 정권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면 당연히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 <시사투나잇>은 정권의 이익과 관계없이 비판할 것을 비판하고 고쳐야 할 것을 지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시사투나잇>은 노무현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똑같은 이유로 <시사투나잇>은 이명박 정권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 만약 이명박 정권 혹은 그에 동조하는 세력에 의해 <시사투나잇>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한국 저널리즘에 대한 공격이다. 청춘을 믿고 동조하며 한국을 한국답게 만들려는 사람들에 대한 테러다.

<시사투나잇>은 KBS의 공기다. <시사투나잇>은 저널리즘의 본질을 보여주는 늦은 밤의 맑은 소리다. "시사투나잇 지못미..."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YTN 지못미... 정도로 충분하다. 정권 하나 바뀌었다고 오랫동안 감사한 마음으로 보아 온 프로그램이 제거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10년, 20년, 30년 이상 계속되는 철저히 저널리즘에 기초한 프로그램을 볼 수 없는 것인가?


자신의 '청춘을 걸고' 이 프로그램을 지키려는 젊은 PD들의 목소리를 무시해야 하는가?

블로그의 불독 저널리즘

Posted 2007/10/29 15:27
불독 저널리즘 (Bulldog Journalism)
: 한 번 목표로 한 것에 대해 집요하고
끊임없이 탐사하고 문제 제기를
그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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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countrybulls.com

불독이라는 개의 유례는 몇 가지 있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근대에 와서 황소(bull)와 싸움을 하는 투견(dog)으로 키워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대개의 견종이 안면부가 돌출된 것과 달리 불독은 평평한 안면이어서 상대를 물기 쉽고 또 습성상 한 번 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고도 한다. 최근 각종 이슈와 뉴스의 전면부로 등장하고 있는 블로그(Blog)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인 블로거(Blogger)는 마치 불독을 연상시키는 집요함이 있다.


다음의 블로거뉴스를 통해 잘 알려진 최병성님은 환경 오염을 부추기는 산업 폐기물이 들어간 시멘트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블로거로 유명하다. 그는 최근 1년 6개월 간의 "쓰레기 시멘트"라는 제목의 각종 취재를 해서 블로거뉴스에 전송해왔다. 다음 검색에서 "쓰레기 시멘트"로 검색하면 그가 작성한 블로그 기사와 쓰레기 시멘트에 대한 논쟁 글을 찾을 수 있다. 최명성님은 2006년 12월 <발암 시멘트가 무죄라고?>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산업 폐기물이 들어간 시멘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왔고 2007년 10월까지 30여 개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환경부는 지난 주 그 동안 쓰레기 시멘트 문제에 대해 문제없음으로 일관하던 자세를 철회하고 시멘트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런 환경부의 입장 변화에 대해 최병성님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라 자평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대해 이견도 있지만 1년 6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끊임없는 노력과 블로그 기사 쓰기를 통해 이뤄낸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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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성님, 이미지 출처 : 동아일보



블로그의 '불독 저널리즘'은 각종 경제, 사회 문제를 다루고 정책 수립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나 전문적인 식견으로 기사를 쓰는 전문 기자와 또 다른 속성이 있다. 시민단체의 경우 일종의 이익 집단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협상과 타협의 중요성이 크고, 전문 기자의 경우 편집자나 데스크의 영향 혹은 소속 미디어 집단의 이해 관계에 종속되기 쉽다. 반면 블로그라는 도구를 통해 싸우는 블로거의 경우 상대적으로 협상과 타협 혹은 어떤 집단의 이익 보다는 자신의 요구하는 바를 위해 매진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한 번 주제를 잡고 시작하면 그것이 몇 달이 되건 관계없이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추적하는 불독과 같은 특징이 있다.

물론 아직도 많은 블로거가 취재를 위한 전문성이 결여되었거나 전문 지식과 연구 비용 등이 부족하여 과연 저널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냐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국내의 경우 특정한 정치적 이슈가 발생할 경우 인터넷 자체를 제어하려는 시도 앞에 블로거의 저널리즘은 심각한 타격을 받기도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부 정치인과 정당은 블로거의 정치적 활동 혹은 정치적 블로그 글을 선거법 위반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는 새로운 미디어의 하나로써 주목받고 있으며 불독과 같은 끈질긴 저널리즘의 표상이 되고 있다. 블로그는 웹(weB)과 로그(LOG)의 약자다. 로그는 일상의 기록을 말한다. 일상의 기록을 적는 것처럼 한국의 현안 문제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블로그의 의미를 크게 한다. 최병성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멋진 기사를 쓰지 않아도, 시민 단체에서 활동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완벽히 몰입하지 않아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일상의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오늘 새벽 스위스전이 끝난 후 내 머릿 속엔 선수단 중 두 명의 얼굴이 명확하게 떠 올랐다.

이천수와 조재진

열정적으로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의 노력과 투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천수의 오럴 사커에 대해 내심 불만이 있었던 내게 그 경기에서 보여준 이천수선수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일필휘지로 그 감정을 옮겼고 오랜만에 다음 블로그에도 그 글을 옮겼다.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어서 블로거 기자단으로 해당 글을 송고했다.

10시간 후.

다음 메인 페이지에 내가 쓴 글이 올라가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순간 매우 당황했고 급히 미디어 다음의 담당자에게 연락하여 해당 글을 메인에서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전화 통화를 통해 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미디어다음에 그 동안 보낸 기사는 직접 취재를 하거나 사실을 조사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 글은 그야말로 감상의 나열이다. 미디어다음 편집진이 이 글을 메인까지 올리도록 선택한 것은 이유가 있겠지만 글쓴이로서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다. 이런 글이 다음 메인에 올라간다면 사람들이 '기자 아무나 한다'는 소리를 하게 될 것이다. 메인에서 내려 주시길 요청한다."

미디어다음의 담당자는 제주도 편집팀에서 이 글이 해당 경기에 대한 좋은(?) 감상이라고 판단하여 메인에 등록할 것을 결정했다며 요구 사항을 반영하겠다고 답변했다. 현재 이 기사는 다른 기사로 교체되어 있다.


이 작은 에피소드를 상세하게 나열한 것은 편집권과 블로거의 관계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언론사에서 편집권은 엄격한 규칙에 따라 운영된다. 기자들은 자신이 쓴 기사가 지면의 중심에 존재하길 바라고 편집자 혹은 편집장은 기사의 가치 판단을 하여 지면에 위치 시킨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과 충돌하는 것은 일상이다. 편집권과 기자의 충돌 가운데 "그 기사를 구석에 박아 달라"거나 "중앙 지면에서 내려 달라"고 기자들이 주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론 오보라든가 잘못된 정보가 포함된 경우는 예외다.

반면 온라인 미디어 중 이번 경우와 같이 일반인이 작성한 기사를 전면부에 배치하는 경우 어느 기준 이상으로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문제는 이 기준이 개인마다 매우 상이하여 특별한 중심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쓴 글로 인해 블로그 하루 방문자가 평소보다 10배 증가한 것을 즐거워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몇 십 명이 증가하기만 해도 큰 부담을 느낀다. 개인적인 판단 기준과 온라인 미디어 편집진의 판단 기준, 거기에다 포털로 해당 기사가 공급되었을 때 포털 편집진의 판단 기준이 섞이면 문제는 더 복잡해 진다. 예를 들어 보자.

오마이뉴스의 한 시민 기자가 자기 집 주변의 풍경을 담은 수필형 기사를 써서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다. 이 시민 기자는 오마이뉴스를 구독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서 썼을 뿐이다. 오마이뉴스 편집진은 이 기사를 오마이뉴스 블로그 메인에 노출시키기로 결정한다. 이로 인해 해당 블로그의 하루 방문자가 평소보다 5배 정도 증가했다. 그런데 이 기사가 네이버로 전송되었고 네이버 뉴스 편집팀에서 이 기사를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노출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기사 하단에 다음과 같은 댓글이 연이어 붙기 시작했다,

- 이것도 기사냐?
- 개마이뉴스다운 기사군
- 요즘은 도그도 카우도 기자라고 하네, 참 기사 쓰기 쉽다

이 상황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오마이뉴스도, 네이버도 아닌 기사를 작성한 바로 그 시민 기자다. 처음 의도와 달리 그/그녀가 쓴 글은 뉴스 유통 구조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 받고 확산된다. 오마이뉴스라는 도메인(domain) 안에 있을 때 부여 받은 가치와 네이버와 같은 포털 웹 사이트로 전달될 때 가치가 달라 지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안에서 '시민 기자'가 갖는 지위는 네이버 뉴스에서 그냥 '기자'가 된다. 전문적인 학습과 직업적 소양, 저널리스트로서 책임과 지위를 갖는 직업 기자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누가 뉴스를 읽을 때 '누가 썼는가?'를 먼저 파악하고 읽겠는가.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깊이 논의하고 대안을 구체화시킨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작성한 글을 UCC (User-Created Content)라고 부르며 기사화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함에 따라 보다 '편집의 방법'에 대해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서 기사화라는 것은 온라인 미디어, 포탈, 특정 웹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 노출되거나 기사가 다른 도메인으로 넘겨지는 유통 과정에서 새롭게 가치가 부여되는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 예제는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의 경우와 오늘 내게 발생한 경우로 설명했다.

이런 고민을 먼저 시작한 몇몇 편집자는 글을 쓰는 이(사용자, 시민기자, 블로거)가 자신의 글을 어느 수준까지 배포되길 원하는 지 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글을 쓸 때 다음과 같은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다.

- 포털 배포 시 메인 기사로 사용 금지
- 오마이뉴스 IT 섹션 메인까지 허용

그러나 이런 규칙은 업체와 개인, 업체와 업체 간 계약 조건 때문에 현실화되기 힘들다. 오마이뉴스와 시민 기자가 맺은 사용자 계약이 있고 오마이뉴스와 네이버가 맺은 콘텐트 사용에 관한 계약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안은 편집자가 해당 기사를 "업체 사용 영역"에 노출할 경우 기사 제작자에게 그 사실을 고지하는 것이다. 미디어다음의 경우 블로거가 제공한 기사를 노출이 심한 영역인 '미디어 다음 only'나 '다음 메인'에 노출할 경우 해당 블로거에게 연락을 취하여 노출에 대한 의사 결정을 타진한다. 물론 대개의 경우 이미 노출을 시킨 후 연락을 한다.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현실의 문제를 고려할 때 차선의 대안이다.

현실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만큼 온라인 미디어나 포털의 사용자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의존성이 부정적인 면으로 확대 강화될 것인 지 아니면 사용자의 자발성과 1인 미디어의 토대가 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 지 명확히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내 입장은 분명 후자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온라인 미디어의 편집권과 블로거/시민기자/사용자에 대해 보다 깊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이 연구 과정에서 성숙한 온라인 저널리즘을 위한 다양한 대안이 도출될 것이며 결국 그런 연구 성과가 현재의 문제점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기자와 블로거

Posted 2006/06/15 00:00
원래 하반기 포탈 전망 분석 보고서에 "기자와 블로거"에 대한 주제가 있었다. 포탈과 신문사닷컴 정도의 제목이었는데 주요 내용은 전문 기자와 그들을 위협하는 블로거 혹은 블로고스피어에 대한 것이었다. 내용을 작성하다 포탈의 전반적인 기조를 설명하는 주제와 다소 거리가 있어서 일단 다음에 다시 작성하기로 하고 미뤘다. 상당 내용을 이미 작성한 후라 좀 아쉽긴 했지만 욕심 부리다 올해 안에 보고서를 못 낼 것 같아 욕심을 접기로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기자를 아주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들이 기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내가 쓴 이야기에 공감을 표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과민 반응을 한다고 싫어하기도 한다. 기자들 중에서도 내 글에 공감을 표하기도 하고 말하지 않지만 심한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건 내가 그런 글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쓰는 글 중 어떤 주장을 담는 것은 "누구의 편에 설래?"라고 질문한다. 그건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다.

이전 글에도 썼듯 나는 기자를 탄광 속의 카나리아라고 생각한다. 어떤 기자는 스스로를 비유할 때 호랑이나 늑대 혹은 매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나는 세상의 탁함을 누구보다 먼저 인지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게 기자의 사회적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카나리아가 살기 위해 지저귀는 소리를 즐거운 지저귐이라고 착각하면 결국 탄광 속의 광부가 죽는다. 또한 카나리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탁한 공기를 그냥 들이 마시고 있으면 카나리아도 죽고 광부도 죽는다. 나는 카나리아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너도 살고 나도 살기 위해 카나리아가 더 예민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자가 그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블로거가 기자의 역할을 일부 대행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완전한 대체는 기자라는 직종의 몰락을 의미한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지 몰라도 여전히 기자는 블로거와 확실히 구분되는 전문 직종이다. 기자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할 학문과 고뇌와 경험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언론사 입사나 신방과 입학 문제는 아니다. 기자는 어떤 직업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저널리즘의 구현체이기 때문이다. 이건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며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에 관계없이 누구나 만나서 술을 마실 수 있고 골프를 칠 수 있고 여행을 갈 수 있다. 그러나 직업 기자는 그렇지 않다. 어떤 정치인과 만나서 술을 마셨다고 쇠고랑을 찰 수 있고, 어떤 경제인과 골프를 쳤다가 나라 망치는데 일조할 수 있으며, 어떤 단체와 함께 여행을 갔다가 인생이 끝장날 수도 있다. 그런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얻는 게 기자라는 전문직이다.

기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에 충실할 때 존경을 얻는다. 기자가 그것을 포기할 때 비난의 대상이 된다. 쓰레기라는 비난을 받아 들여야 하고 기생충이라는 욕을 감내해야 한다. 아직 기자와 블로거가 차이가 있다면 그런 역할과 책임에 대한 경계선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기자들은 블로거와 비교되기엔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블로거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블로거가 아무리 저널리즘에 근접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블로거일 뿐이다. 그러나 기자가 지키고 사수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방기하기 시작하면 자신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그 자리에서 밀려나 있을 것이다. 그 자리를 블로거가 차지하든 시민 기자가 차지하든 네티즌이 차지하든 기자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블로거를 두려워하는 기자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따로 있다.

아래는 지난 해 11월부터 미디어 다음에서 추진 중인 블로거 기자단의 주요 성과 분석을 위해 뽑은 표다.

블로거 기자단은 다음에 블로그를 생성한 사용자가 자신의 글을 미디어 다음으로 보내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때 주제 카테고리를 정해서 보내는데, 이 카테고리에 등록된 글 가운데 조회수가 50만 회를 넘는 것만 뽑아 보았다. 50만 회가 넘지 않는 것은 최고 조회수 게시물을 뽑았다.

카테고리 옆에 있는 건 수는 게시물의 실제 등록 시도 건수를 의미한다. 게시물을 올린 후 삭제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정확히 현재 저장된 게시물 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목 옆의 숫자는 댓글의 숫자를 의미한다. 조회수는 unique visitor (방문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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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 회 이상의 히트를 잡은 이유는 '빅 히트'라고 부를만한 숫자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블로거 기자단의 기사 중 편집자에 의해 선정된 기사는 "미디어 다음 Only"라는 오른쪽 테이블에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경우 다음의 메인 페이지에 노출되기도 한다. 30만 회 이상의 히트를 기록한 게시물과 40만 회, 50만 회의 게시물을 비교 분석하는 건 좀 귀찮아서 아예 사례가 적은 50만 회로 선택했다.

위 리스트의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미디어 다음 Only"에 노출된 기사들이다. 이들 중 몇몇은 메인 페이지에 노출되었다. 기사의 제목과 내용을 읽어 봤을 때 "빅 히트의 조건"으로 추정할 수 있는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뻔히 아는 것일수도 있으나 이 기회에 확인해 본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1. 현재 이슈와 밀접할 것
2. 제목의 선정성과 유혹
3. 세대를 초월하는 일반적 주제


빅 히트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다룬 것은 없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뉴스 편집자의 고의적 선택
2. 블로그 기자단의 기사 송고 특징
3. 정치 기사는 전문 기자의 작성 기사로, 정치 토론은 아고라로 구분


1항과 3항은 같은 개념이다. 미디어 다음 편집 정책을 알 수 없으므로 단지 추정할 뿐이지만 결과에 근거할 때 비록 편집 정책에 이런 내용이 없더라도 실제 기사를 보낸 블로거의 선택, 편집자의 선택, 독자의 선택에서 이런 공통점을 추론할 수 있었다. 미디어 다음 측에서 좀 더 과학적인 분석이 가능하도록 협조를 해 준다면 더욱 정확한 정보를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분석은 제한된 정보를 근거로 추론한 것이니 참조만 하기 바란다. 간단한 분석을 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빅 히트가 되지 않은 송고 기사는 100회 미만의 히트수를 기록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게 무리일 지 모르겠으나 보다 많은 블로거의 기사를 수집하기 위해 평균 기사의 히트 수 혹은 트래픽을 높이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또 다른 생각은 추천 수가 매우 적은 점이다.

빅 히트 기사와 편집자에 의해 선택되지 못한 기사 간의 큰 히트 차이와 매우 저조한 추천.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네이버 붐과 비교할 때 simply opinion 시스템에 대해 좀 생각해 봐야지 않을까 싶다. 물론 네이버 붐은 미디어가 아니라 말 그대로 시간 떼우기를 위한 놀이터 역할이므로 미디어 다음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다음이 네이버 붐을 벤치 마킹해야 하는 이유는 있다. 모든 블로거가 늘 진지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미디어의 진지함과 파괴력 그리고 블로거의 경쾌함과 재빠름이 연결되기 위해 미디어 다음은 네이버 붐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