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일간지 웹 사이트의 기획을 하는 분과 만났다. 현재 웹 사이트에 대한 이야기와 새로운 수익 모델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몇 가지 새로운 웹 서비스를 알려줬다. 후반부에 이야기했던 한 아이디어를 정리해 본다.






일단 이 아이디어는 날밤님에게 바친다. 몇달 전 그가 GPS Logger를 사용한 웹 서비스를 만든 후 상담 요청을 해서 만난 적 있는데 그 때 했던 이야기를 이번에 써 먹었기 때문이다.



1. 이야기의 출발

컨설팅을 받으러 온 한 일간지 웹 사이트(이하 신문사닷컴)에서 새로운 포맷과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투자할 금액도 그리 많지 않고 현재 운영 중인 웹 사이트의 방문자도 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도 자원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다량의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니 그 자원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혁신은 해야 한다. 이럴 때 동네 북처럼 거론되는 웹이다. 웹은 싸니까, 웹은 쉬우니까, 웹은 혁신적이니까... 기타등등의 이유를 붙여 웹을 통해 큰 비용을 쓰지 않고 효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길 원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요구를 받아 들여야 한다.

한탄스러운 상황에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적은 비용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효과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다. 이럴 때는 문제 의식 자체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2. 딜레마

문제는 '비용을 가급적 쓰지 않고' 또한 '현재 상태를 유지하며' 게다가 '혁신'까지 하고 싶다는데 있다. 경제학적으로 딜레마다. 투입되는 자원이 없는데 산출물의 질이 높아지는 경우는 비리나 삽질이 연루된 경우 외엔 별로 없다. 따라서 비용을 가급적 쓰지 않고라는 전제가 틀렸다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질문을 바꿨다,

"소요되는 비용에 비해 활용되지 못하는 부분을 발견하여 혁신할 수 있는 방법은?"

비용이 소요되기는 하지만 결과물이 비용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상품으로 전환될 수 있음에도 부주의나 무관심에 의해 버려지는 가치를 재 발견하겠다는 말이다. 이 지점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신문사닷컴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모든 콘텐츠의 생산자인 '기자'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많은 기자를 만나며 그들이 했던 이야기와 내가 블로그를 통해 경험했던 많은 기사 작성 사례, 신문사닷컴의 고민을 종합하여 머릿속에서 한참 굴린 끝에 이런 한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나의 기사를 쓰기 위해 기자들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움직이는데 기사에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거나 부수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좋다, 뭔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많이 움직인다는 것이 아이디어의 출발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3. 아이디어 만들기

하나의 문장을 여러 개로 쪼갰다.

- 기자가 하나의 기사를 쓴다
- 여러 사람을 만난다, 다양한 방식으로
-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동한다
- 비정기적으로 여러 곳을 이동한다
- 어떤 장소, 어떤 시간에 어떤 사람을 만난다

쪼갠 문장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이 문장들을 어우르는 하나의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다. 곧 하나의 아이템이 나왔다, "지도(map)" 몇 가지 다른 아이템이 떠오르긴 했지만 지도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지도에 뭘 표시해야 하지? 이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아마도 시나리오'를 사용한다. 실제 구현되기 힘들더라도 '아마도'라고 이야기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가 움직인 경로를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가 만난 사람을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의 메모를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가 쓴 기사를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가 찍은 사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에도 기자가 먹은 음식을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기자가 작성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것이다. 이런 콘텐츠가 지도 위에 매핑될 수 있다면 그것에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콘텐츠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 그 지역에 대한 코멘트와 링크
- 그 지역에 대한 사진과 동영상
- 기자가 만난 사람에 대한 추가 정보
- 기자가 방문한 지역에 대한 '동감' (나도 방문해 봤다)

좋다, 이 정도면 지도라는 콘텐츠 위에 매핑할 또 다른 콘텐츠의 방향은 대략 잡혔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도대체 어떤 기자가 취재 활동을 하며 이런 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 기자가 무슨 관광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기자에게 이런 정보를 일일이 기록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4. 사람에 대한 생각

내가 새로운 웹 서비스를 기획할 때 가장 먼저, 가장 오랫동안 고려하는 것은 '사용자의 편리함'이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지도 위에 멋진 정보를 기록하고 싶어도 그런 정보를 기자가 일일이 기록해야 한다면 기자에게 매우 불편한 서비스다. 콘텐츠의 제공자인 기자 자신이 불편하고 귀찮은 서비스를 이용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돈이 더 생기는 것도 아닌데 기자들이 이런 서비스를 위해 헌신할 까닭이 없다.

그렇다고 데스크(편집장)가 이런 콘텐츠를 기록하도록 기자들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기자의 본분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것이고 뉴스를 작성하고 보도하는 것이지 그 주변의 콘텐츠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기자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데스크는 정신이 나갔다고 할 것이다. 결국 기자들에게 뭔가 해 주길 바래서는 안된다.

그럼 포기? 아니다. 고민을 좀 더 해 보자. 기자들이 뭔가 적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바로 그 때 떠 오른 것이 'GPS Logger'다. GPS는 위성을 통해 현재 위치를 추론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GPS Logger는 GPS 기록을 저장하는 작은 기계를 말한다. 작은 MP3 플레이어 정도 크기의 GPS Logger를 켜고 이동하면 이 기계는 각각 다음과 같은 정보를 기록한다,

- 현재 위치, 시간, 이동 속도, 고도

게다가 이 기계 중 싼 것은 몇 만원도 하지 않는다! 비싸봐야 10만원이다!




5. 서비스 구현

기자들에게 GPS Logger를 주면 된다. 가방에 넣고 다니라고 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회사에 돌아오면 GPS Logger를 아르바이트생에게 던져 주라고 이야기하면 된다. 아르바이트생은 GPS Logger를 컴퓨터에 연결해서 기자가 움직인 경로를 컴퓨터에 저장한다. 기자들에게 직접 서버에 GPS Logger를 업로드하라는 것은 가혹하다. 아르바이트생을 쓰자. 물론 땡땡이를 친 기자라든가 사생활 보호를 주장하며 찜질방이나 안마를 한 기자들이라면 직접 입력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그럼 구멍난 시간은? 어쩌면 이 서비스는 신종 기자 감시 시스템이 될 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데이터는 지도 서비스에 매핑되어 기자의 하루 경로를 지도 위에 표시하게 된다. 나중에 지도에 접속한 기자는 그 시간대에 만난 사람들을 직접 입력할 수 있다. 기자들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의 의미로 지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며 나중에 이 정보는 기자들의 '취재 수첩'으로 동작한다. 이 정보 중 일부는 사용자에게 공개되고 이 서비스는 신문사닷컴 메인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노출된다,

"Repoter's Road Map"



6. 그림 그리기

이야기를 하는 중 수첩을 꺼내서 웹 사이트의 구현 모습과 구현되어야 할 콘텐츠, 개발해야 할 과제를 그림으로 그렸다. 말로만 듣고 잘 이해를 못하던 것도 간단한 그림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중에 "다른 기자들의 로드맵 보기"라든가 "관련 기사 보기"와 같은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다.

비주얼리제이션(Visualization)은 아이디어를 설득하고 구체화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매우 훌륭한 방법이다. 특별한 도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연필과 종이가 있으면 된다. (그린 그림은 귀찮아서 생략)



7. 종합적 사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걸린 시간은 2분 정도. 글을 길게 썼지만 생각하는데 걸린 시간은 몇 십초 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종합적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지 순차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종합적 사고는 '똥 누며 담배 피며 휴대전화로 게임하며 숨쉬고 눈 깜박이며 침 넘기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동시에 다섯 가지 이상의 일을 하고 있지만 똥 누는 것과 눈 깜박이고 침 넘기는 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종합적 사고로 아이디어를 내 놓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디어를 내 놓은 구체적인 고민은 한 두 가지지만 나머지 몇 가지 고민은 부지불식 간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종합적 사고는 타고 난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이런 매쉬업(mash-up) 형태의 아이디어는 많은 토론과 종합적 사고를 통해 나올 수 있다.


물론 이 아이디어는 헛점이 많다. 또한 내 이야기를 들었던 그 회사가 이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아이디어는 위대하지만 구현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똥이다.

신문사닷컴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웹 서비스를 이야기한 후 그 아이디어를 관철시키기 위해 필요한 다음 과정을 말했다. "비전의 제시"와 "효과의 확신"이 그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재미있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그 아이디어가 돈이 되나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래서 아이디어는 항상 사업의 비전과 그 아이디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효과를 확신시켜야 한다. 이런 생각 또한 종합적 사고의 일부다.

나는 이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며 "Repoter's Road Map"을 API로 제작하여 제휴사 웹 사이트에 공급하고 개인 블로그의 widget으로 공급하면 신문사닷컴으로 향한 트래픽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증가하는 트래픽은 광고 수익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런 새로운 시도를 미디어를 통해 홍보하여 업계의 주목을 받고 그 주목을 광고 수익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합적 사고로 아이디어를 낸다면 아이디어 자체의 완결성을 아이디어 이상의 영역에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일반 사업의 영역이다. 만약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면 아이디어의 후반부에는 반드시 사업적 고려가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웹 기획자 되기

Posted 2008/11/06 04:11
1995년 웹을 처음 접한 이후 13년 간 웹과 관련된 일을 하며 나를 부르는 호칭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런데 그 이름 중 내 마음에 드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웹에 관심을 갖던 초창기 학생이었던 나는 웹이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와 브라우징을 통한 손쉬운 콘텐츠 입수에 흥분해 있었고 그것을 전문 잡지나 신문 등에 기고를 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책을 두 권 쓰기도 했는데 그 이후 더 많은 잡지에 글을 썼다. 당시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테크라이터'라고 불렀다.





몇 년 후 졸업을 하고 웹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 회사에서 새로운 웹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했다.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는 나를 '웹 마스터'라고 불렀다. 이후 전망을 다소 수정하여 신규 사업에 걸맞는 웹 서비스를 발굴하고 조직하는 일을 했는데 사람들은 나를 '신규사업기획자'라고 불렀다. 또 몇년이 지났고 나는 두 군데 정도의 회사에서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 회사의 사장과 협의를 하여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웹 서비스를 총괄 기획, 개발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 때 나에 대한 호칭은 따로 없었다. PM(Project Manager)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실제 PM은 따로 있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사업본부장'이라고 불렀는데 그것도 적절하지 않았던 것이 새로운 웹 서비스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실제 개발의 핵심적인 부분에 개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3년 간 나는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드려는 사람들을 돕고 조언하며 개발의 방향을 제시하는 '웹 서비스 컨설턴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제대로 된 호칭은 아닌 것 같다. 컨설턴트라는 직업의 정의를 따르자면 조언과 교육의 역할이 중요한데 나는 실제로 새로운 서비스의 개발을 핵심 위치에서 지도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웹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만 어떤 순간도 나의 정체성을 정확히 표현하는 호칭을 들어 본 적 없다. 바보같이 들릴 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직업의 정체성이 뭔가 고민하고 있다.


10여년 전 '웹 마스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한 적 있다. 그들은 웹 마스터라는 직업의 정의와 해야 할 일, 미래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했다. 그런데 토론 중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웹 마스터 모임이라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참석자들은 웹 마스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웹 사이트 개발도 웹 마스터 중심이어야 하고, 운영도 웹 마스터 중심이어야 하고, 마케팅도 그렇고, 프로모션도 그렇고... 모임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발표자들에게 질문을 했다, "혹시 이 모임이 수퍼 히어로 모임이었나요?" 그 모임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

당시 웹 마스터라고 하면 웹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프로그래밍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운영도 하는 그런 역할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도 프로그래머가 있었고, 디자이너도 있었고, 기획자도 있었고, 마케터도 있었고, 프로모터도 있었고, 경영진도 있었다. 그럼 웹 마스터는 무엇인가? 시간이 흐른 후 '웹 마스터'라는 직종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시절을 돌이켜 볼 때 웹 마스터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릴 수 있었다. 소규모 영세 웹 사이트를 운영하는 신생 기업에서 웹과 관련한 전반적인 사항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웹 마스터'라고 불렀던 것이다. 웹의 초창기에는 하나의 웹 사이트를 만드는 것을 한 개인이 해 낼 수 있는 환경이었다. 나 또한 몇몇 웹 사이트를 혼자 만들었고 혼자 운영했다. 야후!와 구글의 초기 버전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에는 혼자 혹은 소수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웹 사이트나 웹 서비스가 매우 많았다.

그러나 웹이 산업화되고 웹 서비스의 규모가 커지면서 혼자 만들 수 있는 웹 서비스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웹이 산업화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능력 이상이 필요한 영역이 점점 늘어간다는 소리며 하나의 웹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웹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려는 모든 회사가 웹 서비스 개발 인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기존에 다른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가 웹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대하려는 경우도 매우 많았다. 이런 회사의 경우 웹에 대한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새로운 인력을 뽑자니 웹과 자기 회사의 사업적 관계를 확신하기 힘들었다.

이런 요구에 의해 웹 사이트나 서비스를 대신 만들어 주는 웹 에이전시 산업이 부흥하기도 했다. 웹 서비스가 정교화되고 복잡하며 보다 높은 기술적 수준을 요구할수록 애매한 직종인 웹 마스터는 설 자리를 잃었고 현재 웹 마스터라는 호칭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대신 웹 기획자나 웹 마케터, 웹 개발자, 웹 디자이너와 같은 신규 업종이 생겨났다. 새로운 직종들의 접두사는 모두 '웹'이다. 때문에 이 직종들에 대한 정의는 아주 간단하다. 웹 기획자는 "웹이라는 환경에서 기획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웹 마케터는 "웹이라는 환경에서 마케팅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웹"은 도대체 뭐지?

"웹은 도대체 뭐지?"라는 질문에 대해 정확히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인터넷의 한 프로토콜로써 브라우저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라고 멋지게 정의해 버릴 수 있지만 그것으로 불충분했다. 하지만 충분한 논의가 없는 상태에서 웹은 급격히 산업화되었고 이미 웹의 사용자와 웹을 통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수억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개념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온 천지에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는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닷컴 버블이 닥쳐왔다.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웹에 기반한 많은 사업자가 도산하거나 파산했고 투자자들은 원금을 회수하기는커녕 쪽박을 차는 경우가 발생했다. 몇년의 암흑기가 흐르는 동안 일부 사람들이 웹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웹 2.0'이라는 횃불이 밝혀졌다. 웹은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주장하며 -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을 점잖게 하는 말이다 - 웹에 기반하여 성공한 사업자들의 성공 신화를 널리 퍼뜨리기 시작했다. 웹은 다시 생명을 얻었다. 그런데 "웹은 도대체 뭐지?"

웹에 대한 정의는 매우 간단하다. 다만 웹은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산업적으로 이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정의가 복잡해진다. 게임 산업에서 이야기하는 웹과 탄광 산업에서 이야기하는 웹은 전혀 다르다. 게임 산업에서 웹은 새로운 게임을 배포하고 가입자를 확보하는 가장 유력한 채널이지만 탄광 산업에서 웹은 탄광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는 웹 페이지 몇 개를 의미할 뿐이다. 게임 산업에서 웹은 모바일, IPTV, 임베디드 디바이스 등 다양한 영역으로 게임 콘텐츠를 확대할 수 있는 멀티 플랫폼이다. 탄광 산업에서 웹은 그런 의미가 없다. 게임 산업에서 웹에 대해 연구하고 개발하는 수 많은 인력이 존재한다. 탄광 산업에서 웹과 관련한 인력은 사업장의 컴퓨터 수리를 함께 하는 사람일 수 있다. 웹과 관련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웹'이라는 큰 개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그보다 훨씬 큰 산업 부문에서 개별성이 있다. 그 개별성 때문에 웹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 10년 전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공통점을 찾기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웹 기획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을 자주 했었는데 가장 난감한 경우가 이런 제목의 강연을 할 때다,

"성공적인 웹 사이트 운영을 위한 노하우"

이런 제목은 매우 매력적이다. 강연을 의뢰하는 기업은 항상 이런 식으로 매력적인 제목을 뽑아서 많은 사람을 모으려고 한다. 그 제목에 반대하며 좀 더 실질적인 제목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온라인 신문 사이트의 구독자 확대를 위한 부가 서비스 기획 방안"

그 러나 이런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너무 구체적이어서 올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제목은 매력적인 것으로 정해지고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모인다. 나는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강연장에 입장해서 인사를 하고 강연을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내 강연은 주제를 잃고 헤매기 시작한다. 강연장에 앉은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석에서 졸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고 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낙서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주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니 이미 강연은 끝장난 것이다. 이런 강연을 몇 번 하고 나면 누구도 다시는 강연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아마 10년 전이라면 애매한 제목의 강연이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그저 웹 마스터라고 개념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직종이 존재했을 무렵엔 이렇게 이야기해도 먹히고 저렇게 이야기해도 먹히는 '일하는 방법'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이야기다. 이미 웹은 충분히 산업화되었고 산업의 개별적 특성에 따라 웹이 적용되는 범위와 형태는 세분화되어 버렸다. 웹 마스터라는 직종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이제 웹은 산업 부문에 따라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웹의 공통적 제어 방법"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은 허구다. 만약 다음과 같은 단어가 포함된 웹과 관련한 강연이나 컨퍼런스가 있다면 절대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

- '모든',  '절대적인', '성공하는', '실패하지 않는', '최신의'


이 즈음이면 웹의 기원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웹의 기원을 알고 싶다면 창안자의 이야기를 듣는 게 바람직하다. 해설서보다 원본을 먼저 보라는 조언을 또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웹(World Wide Web)의 개념을 제안한 사람은 누구인가 검색해 보라. 검색에서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팀 버너스 리라는 이름만 찾았다면 할 수 없다. 하긴 역사는 가장 뛰어났던 사람만 기억하는 법이다. 사람들은 토머스 앨바 에디슨이 1000개가 넘는 특허를 등록했다는 것만 기억하지 그의 특허를 위해 헌신했던 수천 명의 다른 연구자들은 전혀 모르지 않나. 에디슨의 발명 중 대부분은 다른 연구자들이 최초 발견했던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쨌든 웹의 개념을 최초 제안한 사람은 팀 버너스 리라고 해 두자.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근처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다른 학자들이 소송을 걸었을텐데 아무런 이야기가 없으니 그냥 그렇게 인정하자. 팀 버너스 리가 1990년에 CERN에서 일할 때 웹의 개념을 세우고 그 다음 해인 1991년 유즈넷의 뉴스그룹인 "alt.hypertext"에 웹에 대해 처음 소개한 글은 이런 것이었다. 고리타분한 내용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웹의 근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니 반드시 읽어야 한다.

"n article <6...@cernvax.cern.ch>
I promised to post a short summary  of the WorldWideWeb project.  Mail me with any queries.

                WorldWideWeb - Executive Summary

The WWW project merges the techniques of information retrieval and hypertext to make an easy but powerful global information system.

The project started with the philosophy that much academic information should be freely available to anyone. It aims to allow information sharing within internationally dispersed teams, and the dissemination of information by support groups.

     Reader view

The WWW world consists of documents, and links.  Indexes are special documents   which, rather than being read, may be searched. The result of such a search is another ("virtual") document containing links to the documents found.  A simple protocol ("HTTP") is used to allow a browser program to request a keyword search by a remote information server.

The web contains documents in many formats. Those documents which are hypertext,  (real or virtual) contain links to other documents, or places within documents. All documents, whether real, virtual or indexes, look similar to the reader and are contained within the same addressing scheme.

To follow a link,  a reader clicks with a mouse (or types in a number if he or she has no mouse). To search and index, a reader gives keywords (or other search criteria). These are the only operations  necessary to access the entire world of data.

     Information provider view

The WWW browsers can access many existing data systems via existing protocols (FTP, NNTP) or via HTTP and a gateway. In this way, the critical mass of data is quickly exceeded, and the increasing use of the system by readers and information suppliers encourage each other.

Making a web is as simple as writing a few SGML files which point to your existing data. Making it public involves running the FTP or HTTP daemon, and making at least one link into your web from another. In fact,  any file available by anonymous FTP can be immediately linked into a web. The very small start-up effort is designed to allow small contributions.  At the other end of the scale, large information providers may provide an HTTP server with full text or keyword indexing.

The WWW model gets over the frustrating incompatibilities of data format between suppliers and reader by allowing negotiation of format between a smart browser and a smart server. This should provide a basis for extension into multimedia, and allow those who share application standards to make full use of them across the web.

This summary does not describe the many exciting possibilities opened up by the WWW project, such as efficient document caching. the reduction of redundant out-of-date copies, and the use of knowledge daemons.  There is more information in the online project documentation, including some background on hypertext and many technical notes.

     Try it

A prototype (very alpha test) simple line mode browser is currently available in source form from node  info.cern.ch [currently 128.141.201.74] as

        /pub/WWW/WWWLineMode_0.9.tar.Z.

Also available is a hypertext editor for the NeXT using the NeXTStep graphical user interface, and a skeleton server daemon.

Documentation is readable using www (Plain text of the instalation instructions is included in the tar file!). Document

         http://info.cern.ch/hypertext/WWW/TheProject.html

is as good a place to start as any. Note these coordinates may change with later releases.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Tim Berners-Lee                 Tel:    +41(22)767 3755
WorldWideWeb project            Fax:    +41(22)767 7155
C.E.R.N.                        email:  t...@cernvax.cern.ch
1211 Geneva 23
Switzerland "


이 쉬운 문장을 굳이 번역할 생각은 없다. 이 문장에 대한 번역은 일종의 신성 불가침이다. 팀 버너스 리가 뉴스그룹에 올린 글의 내용은 일종의 종교 창시자가 내린 10계명과 같다. 그가 내린 계명은 모두 이뤄졌다,

- 웹의 콘텐츠는 읽기만 할 게 아니라 검색도 될 것이다 : 구글이 최선봉에서 구현했다
- 여러가지 포맷의 문서가 있을텐데 어쨌든 똑같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브라우저와 OS의 합작으로 해결되었다
- 그냥 클릭만 하면 모든 데이터을 읽을 수 있다 : 물론이다
- 다른 프로토콜(FTP, NNTP)의 데이터도 읽을 수 있다 : 물론이다
- 웹 페이지를 만드는 것도 정말 쉽다 : 매일 수백만 개의 새로운 웹 페이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블로그를 보라!
- 모든 형태의 데이터를 공유하려면 애플리케이션의 표준이 필요하다 : Flex를 보라
- 이게 끝이 아니다 : 나도 안다

그 는 이런 계명 뿐만 아니라 1991년 시점에서 브라우징할 수 있는 알파 버전의 브라우저와 테스트 서버와 테스트 파일까지 공개해 두고 있다. 이런 노력을 했으니 팀 버너스 리는 웹의 창시자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나머지 몇 명은 대충 넘어가도 좋다. 팀 버너스 리의 뜻을 따라 수 많은 사람들이 웹이라는 공간에 뛰어 들어 개발과 개선과 혁신을 거듭했다. 그리고 지금의 웹이 존재하고 있다. 이제 웹의 근본을 알았으니 다시 웹에서 일하는 사람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웹기획자란 무엇인가? 1999년 쯤 이 직종을 처음 들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웹 기획자'라는 표현에 대해 매우 안타까운 느낌이다. 웹을 뭐 어떻게 기획하겠다는 것인가? 웹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인가? 팀 버너스 리의 연구 과제를 이어 받아 웹을 좀 더 개선하려는 사람들인가? 아니다. 현실에서 '웹 기획자'는 '웹 사이트 기획자'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웹 기획자라는 단어에 뭔가 더 큰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착각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하는 일을 뭔가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초창기 웹 기획자라는 단어를 만든 몇몇 개념없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허튼 착각이 계속되는 게 문제일 뿐이다.

웹 기획자는 학술적인 측면에서 천체 물리학자나 상담 심리학자나 해양 생물학자와 비슷한 것이다. 기획자라는 범주에서 '웹'이라는 전문 분야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만약 자신을 '웹 기획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팀 버너스 리처럼 웹이라는 프로토콜이나 시스템에 대해 기획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학원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현재 스스로 '웹 기획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대부분은 '웹 사이트 기획자'다. HTTP 프토토콜로 접근할 수 있는 웹 페이지를 기획하는 사람이다.

<html> 안녕! </html>

이 런 HTML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이면 모두 웹 사이트 기획자다. 저 한 문장을 저장하고 확장자를 html로 바꾼 후 웹 서버에 올리면 바로 웹 페이지가 되기 때문이다. 웹 사이트 기획자는 이런 식으로 HTML을 이해하고 그것을 웹이라는 공간에 노출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웹 사이트에 대한 요구가 더 복잡해지면 더 많은 HTML 코드를 알아야 할 것이다. 스크립트가 들어갈 수도 있고, 데이터 전달 포맷이 들어갈 수도 있고, 플래시와 같은 리치 미디어가 들어갈 수도 있지만 결국 웹 사이트 기획자는 '출력'에 관계된 일을 기획하는 사람이다. 잡지로 치면 레이아웃 기획자다.

그런데 많은 웹 기획자들은 이 정도의 일이 자신이 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웹 기획자들은 웹 사이트에 대한 콘셉트와 형식과 사용자 편의성과 운영에 대한 기획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당신의 정체성은 '웹 콘텐츠 기획자'다. 웹 사이트의 콘셉트와 형식과 편의성과 운영은 '콘텐츠'에 의해 지배받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신은 콘텐츠 기획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도 기획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말이다. 예를 들어 사용자들이 올린 사진 이미지를 조합하여 동일한 취미를 갖는 사람을 친구로 엮어 주는 서비스를 기획하는 웹 기획자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런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는 사람들은 '웹 서비스 기획자'라고 부를 수 있다. 서비스의 개념을 소프트웨어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서비스는 소프트웨어의 일부분으로써 동작하는 서비스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용자들이 참여하여 만족하고 반복 사용하는 웹 페이지 전반을 이야기한다. 웹 서비스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웹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웹 페이지 자체가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웹 서비스 기획자는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그런 결정권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웹 서비스 기획자다. 웹 서비스 기획자는 사용자의 사진 이미지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방법으로 파일 업로드 도구를 직접 개발하도록 기획할 수도 있고, 이미 개발된 모듈을 구매할 수도 있고, 플리커나 네이버와 제휴하여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 선택하는 권한이 있으며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웹 서비스 기획자다.


웹 기획자는 허망한 단어다. 웹에 대한 개념이 산업적으로 너무나 세분화되었기 때문에 이제 웹 기획자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자신이 원하는 바에 의해 웹 사이트 기획자가 될 수도 있고, 웹 콘텐츠 기획자가 될 수도 있고, 웹 서비스 기획자가 될 수도 있다. 각각에 대해 산업이 요구하는 역량와 경험과 지식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어떤 웹 사이트 기획자도 모든 웹 사이트에 대한 기획을 할 수 없다. 이 평범한 진리를 웹 기획을 하려는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웹 사이트든 웹 콘텐츠든 웹 서비스든 우리는 제한된 부분에 대하여 기획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모바일 웹 사이트를 성공적으로 기획한 기획자가 모든 웹 사이트를 성공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가? 게임 웹 콘텐츠를 성공적으로 기획한 기획자가 모든 웹 사이트를 성공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가? 커뮤니티 웹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기획한 기획자가 모든 웹 사이트를 성공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가? 모두 NO라고 대답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왜 항상 '그럴 수도 있다'라고 거짓말하는가?


그렇다면 모든 웹 기획자들은 자신이 성공한 한 분야에 머물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커뮤니티 웹 사이트를 성공적으로 만든 기획자가 상거래 사이트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0%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개념의 혁신"

지 금까지 우리는 어떤 회사에 소속된 '기획자'라는 관점에서 웹 기획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 개념 속에서 웹 기획자는 늘 자기 한계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무엇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누구와 만나든 늘 '회사'와 그 회사의 '목표'에 제약되는 생각과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아는 어떤 기획자는 한 회사에서 10년을 일하고 있다. 그는 매년 회사에서 수 없이 많은 제안을 하지만 늘 회사의 주 수익 모델인 웹 사이트의 기획만 하고 있다. 그의 연봉은 계속 높아지고 있고 회사의 매출은 늘어가고 있지만 그는 오늘도 자신의 기획 역량이 회사 내부에 머물러 있음에 침통해한다. 그는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그의 유일한 잘못은 현재의 위치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안정적이며 편안하고 미래가 보장되는 위치를 유지하는 것은 곧 변화하는 미래를 스스로 제거하는 것이다. 그는 웹 기획자로서 변화를 거세하며 변화를 바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웹 기획자가 경쟁의 정글에 스스로 던져 버릴 각오가 있다면 이제부터 자신을 '웹 서비스 디렉터(Web Service Director)'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내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서비스가 있는가? 그 서비스를 어떻게 만들 것이며 얼마의 비용이 필요하며 얼마의 기간이 소요되며 어떤 사람이 있어야 하며 어떻게 성장할 것이며 누구를 만나야 첫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웹 서비스 디렉터의 길을 걸어야 한다. 웹 서비스 디렉터는 자신이 회사이며 자신이 자본이고 자신이 원동력인 1인 기업이다. 영화로 치자면 감독이다. 감독 중에도 독립 영화 감독 쯤 될 것이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웹 기획자라는 애매하고 이런 저런 일에 언제든 얽힐 수 있는 일을 하든 웹 콘텐츠 기획자가 되든 웹 서비스 기획자가 되든 웹 서비스 디렉터가 되든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의 몫이다. 그러나 선택 뒤의 결과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어떤 선택이든 결과는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좀 더 복잡한 일을 하려고 할수록 고통은 깊고 댓가는 값지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웹 서비스 디렉터'를 가장 추천하고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라. 가장 힘들고 어렵고 추천하기 힘든 일을 가장 끝에 이야기하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세상 어디에도 쉽고 빠르게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래 전에 경보 경주를 본 적 있는데 멀쩡한 사람이 그 경주에 끼어들었는데 상위 등수에 들지 못했다. 신체 장애자들은 목숨을 걸고뛰었고 그 사람은 그냥 열심히 뛰었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솝 우화와 같은 이야기다. 세상 어디에도 한 번에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병신들과 함께 뛰는 경주에서 자칭 정상인이라는 자가 일등을 하지 못했다. 당시 그는 한 쪽 다리 뿐인 사람들을 우습게 보았고 심지어 그들과 뛰며 농담도 했다. 문제는 그 경주의 길이가 12km였다는 것이다. 그는 5km부터 뒤지기 시작했고 장애인들은 느리지만 꾸준한 레이스를 펼쳤다. 그는 결국 8km 지점에서 기권을 했다. 경기에 참여한 장애인들은 모두 결승선에 도달했다. 가장 마지막에 도달한 장애인은 11시간이 걸렸다.

웹 서비스 개발팀의 팀장

Posted 2008/10/17 06:37
지위가 사람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다. 심리학적인 관점이든 경영학적 관점이든 지위에 따라 똑같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 양식이 달라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은 웹 서비스 개발팀의 팀장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웹 서비스 개발팀의 팀장'은 프로그래머를 지칭하지 않음을 분명히 해야겠다. 개발팀의 팀장이라면 대개 프로그래머이거나 프로그래머 경력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웹 서비스 개발팀'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여기서 '개발팀'은 특정 웹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 모두를 말한다. 개발팀은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과 디자인을 하는 사람, 기획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마케팅이나 고객 지원, 프로모션 팀도 포함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될 경우 개발의 범주가 '비즈니스 개발'로 확대된다.


거부

새로운 웹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팀이 구성될 시점이다. 누군가 이 팀을 총괄할 팀장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팀장 대신 PM(Project Manager)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고, 팀장과 PM이 각각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팀장을 뽑아야 한다. 서로의 장점과 한계를 잘 알고 있는 작은 조직의 경우 자연스럽게 팀장이 정해 진다. 어떤 작은 조직은 누구도 팀장 경험이 없었고 팀장의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의논하지도 않았지만 그 사람이 팀장이 되어야 한다는데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왜냐면 그 사람이 팀을 만든 사람이고 회사의 사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팀장을 선정하는 문제는 복잡해진다. 어떤 조직은 팀장이 되려는 사람이나 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고, 또 다른 조직은 팀장이 되려는 사람이 아예 없거나 팀장이 되지 않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큰 조직은 실제로 팀장의 역할 수행에 대한 문제보다 누구도 팀장이 되지 않으려는 문제가 더 자주 나타난다. 그 이유도 다양하다. 큰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팀장이 되길 거부하는 이유는 대개 이런 것이었다.

- 시간이 없다
- 바쁘다
- 다른 일을 해야 한다
- 그가 훨씬 잘 할 것이다, 난 바쁘다

자신이 팀장이 될 수 없는 수 천 가지의 이유를 들어 봤지만 대개 위 이유를 벗어나는 경우는 없었다. 웹 서비스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회사는 제대로 된 인재를 개발팀에 포함시켜야 하는데 인력 배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번째 선정 작업은 바로 '팀장'이다. 누군가 나서서 자신이 팀장이 되겠다고 하는 아름다운 광경은 보기 매우 힘들다. 특히 누구도 다루기 힘든 뜨거운 감자와 같은 프로젝트의 개발팀장을 뽑는 것은 꽤 까다로운 일이어서 이것 때문에 프로젝트 시작이 지연되기도 한다.

몇 년 전 한 회사가 처한 상황도 비슷했다. 벌써 1개월 전에 프로젝트에 돌입해야했지만 개발팀장이 뽑히지 않은 상태였다. 회사에서 개발팀장 후보자에 오른 사람은 3명이었다. 회사는 3명 중 누군가 반드시 팀장이 될 것이라 확신했던 것 같다. 그러나 3명 모두 개발팀장이 되길 거부했다. 3명이 거부한 이유는 흥미롭게도 3가지였다. 3명을 만나서 거부의 이유를 들어 봤다,

A씨 : "현재 업무가 과중해서 새로운 업무를 맡을 수 없어요."
B씨 : "프로젝트에 처음부터 제가 개입한 것도 아니고 제가 잘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C씨 : "그동안 제가 했던 일과 관련이 많기는 하지만 저는 곧 회사를 그만 둘 것입니다."

맙소사! 회사에서 그렇게 믿고 있던 개발팀장 후보자 3 명은 모두 그럴싸한 이유를 대며 프로젝트를 담당하지 않겠다고 선포하고 있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내부 후보자 대신 새로운 외부 인력을 뽑아야 할까? 아니면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에 개입하고 싶어하는 보다 경력이 적은 사람을 다시 후보자로 물색해야 할까? 고민이 꼬리를 물고 있을 때 문득 세 명이 내게 정말 정확히 거부의 이유를 밝힌 것인지 궁금해졌다.


진실

나는 3 명의 후보자의 평판을 알아 보기 위해 그들과 친근하거나 그들과 현재 업무를 함께 진행 중인 사람들을 만나가기 시작했다. 후보자들의 회사 동료와 친구, 상사를 만나서 그들의 최근 상황과 프로젝트에 대한 입장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3 명의 후보자 중 두 명은 동일한 시기에 다른 회사에서 현재 회사로 이직한 사람이었고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또 다른 한 명은 조금 늦게 입사했는데 두 사람과 관계가 그렇게 좋지 못한 편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세 사람이 모여서 이 프로젝트의 팀장으로 누가 적절할 지 의논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A씨는 B씨를 추천했다고 한다. C씨는 자신이 이 프로젝트의 적임자라고 생각했지만 별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회사는 이런 관계를 잘 모른 상태에서 세 명의 후보자들을 공정하게 평가하여 팀장으로 임명하겠다고 공지를 했다. 회사 측에서는 C씨가 가장 적절한 후보자라고 내부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문제는 회사 측의 생각을 이미 세 명의 팀장들이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자 세 명의 후보자들은 위와 같은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C씨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한 것은 A씨와 B씨가 만약 B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개발팀장이 된다면 팀원 차출이나 프로젝트 협력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주위에 이야기를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C씨는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회사에 다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3류 소설과 같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내 심정은 오히려 편안했다. 최소한 모든 후보자들이 프로젝트에 무관심한 상태는 아닌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프로젝트를 맡으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작은 권력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프로젝트에 대해 무관심한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 따위 권력 암투를 벌인 대가는 나중에 프로젝트가 시작된 후 '완결성 낮은 웹 서비스'가 나왔을 때 100배로 복수하면 될 일이다.

프로젝트 개발팀장을 선정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를 알아 냈다. 회사의 대표자와 이런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그는 그런 상황이 있다는 걸 대충 짐작은 했다고 말했다. 그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나는 세 명 중 한 명을 회사에서 떠나게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결론은 어떻게 되었을까. 프로젝트는 진행되었고 아무도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대신 프로젝트는 새로운 팀장을 영입하여 새롭게 구성된 팀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비록 프로젝트는 2개월 가량 더 지연되었지만 회사의 내부 권력 싸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기존 팀장들은 회사의 도움으로 새로운 교육 과정에 들어가거나 다른 업무를 부여 받는 식으로 갈등을 해결해 나갔다.


이 이야기는 개발팀의 팀장에 대한 수 많은 이야기 중 극히 작은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프로젝트의 팀장을 선정할 때 그들이 가진 기술적 가치로 판단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의 생각이나 상황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고 단지 그가 가진 기술과 경험에 의해 팀장을 선정하게 된다면 그 결과물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뻔하고 뻔한 이야기는 그 가치가 분명하지만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그저 쓸모없는 분란을 오랫동안 보존할 뿐이다.


지울 사진이면 저 주세요

Posted 2008/08/26 07:17
DeletedIamges - The Junkyard of Art
(via hof)






사람의 생각이란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흔하다. 특별히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한 영역이나 오랜 연구가 필요한 영역 또한 그런 경우가 많다. 2006년 중반에 "온라인 재활용 서비스"를 기획했다 파기한 적 있다. 당시 기획에서는 모바일 기기 특히 휴대전화에 있는 동영상이나 사진을 버리는 서비스를 기획했다. 데스크톱 사용자를 위해서는 기존 '휴지통'을 대체하는 업로드 콤포넌트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기획했다. 자신에게 쓸모 없어진 디지털 콘텐츠 특히 사진을 버릴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였는데 주변에서 너무 '공공의 성격이 강하다'며 반대했고 나 또한 별로 재미 없는 것 같아 포기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와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어 버렸다. 기능이나 구현 방식은 매우 다르지만 누군가가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재활용하겠다는 콘셉트는 유사하다.

서비스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판단보다는 사람의 생각은 그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이상 크게 차이가 없고 특히 온라인 웹 사이트라면 그 차이가 더욱 좁다는 생각이다.

촛불을 꺼야할까?

Posted 2008/06/23 19:49
요즘 블로고스피어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촛불 집회(문화제와 집회를 구분하자는 사람도 있지만 별 의미없는 이야기라고 본다)를 이 정도에서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간혹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촛불 집회에 참석했거나 혹은 촛불 집회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첫불을 끄거나 내려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이어지는 댓글은 대개 좀 과격한 편이다. 촛불이 민심인데 그게 끄자고 이야기한다고 끌 수 있냐는 반박이 많다. 아마 그런 주장이 맞을 것이다. 촛불이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민심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촛불을 들고 나온 사람들의 민심이기는 하다. 그들이 불만족스럽다면 그것 또한 민심이다. 촛불을 끄고 말고는 토론을 해서 나올 결론이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결정할 문제다.

촛불 집회는 점점 더 <아크로폴리스>와 같은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섯부른 예측은 경계해야 하지만 촛불 집회는 한국적 민중 정치 투쟁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싶다. 오래 전 민중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던 선배들이 민중이 직접 정치에 대해 토론하고 주인되는 시민 민주주의는 한국에서 요원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선도 정치를 중시하던 당시의 상황 - 군부독재에 의해 엄혹한 시절을 경험했고 물리적 투쟁이 가장 중요한 투쟁 이슈였던 당시의 경험을 했던 사람들에게 현재의 촛불 집회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웹 서비스 기획자로서 현재 촛불 집회와 같은 변화가 한국민의 일상 생활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 변화는 과거 에너지의 부산물이고 또한 새로운 변화를 추동하는 에너지원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어쩌면 사용자 참여 형태의 웹 서비스가 한국에서 다시 부흥할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로 대표되는 웹의 큰 변화를 뒤이을 새로운 서비스의 탄생을 예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웹 사이트의 정체성(identity)

Posted 2008/04/28 10:36

소크라테스의 그 유명한 격언인 "네 자신을 알라"를 기억하실 겁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함을 스스로 깨달음으로써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직접 저술한 책이 없는 관계로 그의 이야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네 자신을 알라"는 표현을 스스로 겸손함을 가지라는 말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정체성(identity)에 대한 고찰"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때 훨씬 유용합니다.


문제 자체의 정체성에 대한 고찰

트레이스존은 몇 년 동안 무료 컨설팅을 하고 있는데, 낯선 분들이 우리에게 회사나 사업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지며 문제에 대해 토로할 때 우리가 응대하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는 자주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 문제는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나요?"

이 질문은 소크라테스가 했던 질문의 방식 중 산파법과 비슷합니다. 우리에게 문제에 대해 토로하는 분들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는 문제 자체에 대해 자주 질문을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문제 자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하려면 일단 그 문제가 올바른 것인지 분명히 판단해야 합니다. 즉, 문제에 대한 대답은 그 문제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장님 신드롬

문제의 정체성이 올바르다면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문제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전 우리를 찾아왔던 한 젊은 기업인은 새로운 웹 사이트를 활성화하는 방안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우리 웹 사이트의 기술력이나 참신성은 우수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마케팅이나 프로모션을 위한 비용이 부족하고 경험도 일천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궁금합니다."


그가 만든 웹 사이트를 유심히 검토한 후 우리는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혹시 그 질문 자체에 대해 의심해 본 적 없습니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그에게 이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약 웹 사이트의 기술력이나 참신성이 우수하지 않다면 마케팅이나 프로모션의 대안은 쓸모없을텐데, 그런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보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황당하다는 듯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없다,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끼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저는 해당 웹 사이트와 같은 기술은 이미 구현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얼마의 비용을 쓰면 동일한 기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참신성 부분에서 '너무나 참신하여 도대체 뭘 어떻게 쓰라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오픈 컨설팅이 끝난 후 그는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갔고 제 기분도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공들여 만든 웹 서비스에 대해 자긍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것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을 만나면 불쾌하기 마련입니다. 그로인해 주변의 조언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흘려 버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장님 신드롬'이라고 부릅니다. 이 신드롬에 빠져 버리면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자신만을 위한 웹 서비스를 만들게 됩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

혁신하는 웹 사이트는 정체성이 없습니다. 왜냐면 항상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때문에 누군가 "이 웹 사이트는 무엇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그 정체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것은 현재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혁신으로 이어지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항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를 발견하려면 어제의 '나'가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오늘과 다른 내일의 '나'를 발견하려면 오늘의 '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하나의 웹 사이트에 대한 고민이고 또한 나에 대한 고민이기도 합니다.

싸이월드 해외 사업의 미래

Posted 2008/03/28 21:27
싸이월드는 국내 최대의 커뮤니티 서비스다. 회원 수만 1천 4백만 개가 넘고 국내외에서 한국의 웹 2.0 서비스를 언급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서비스다. 싸이월드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유사한 서비스를 수출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서비스의 미래가 매우 불명확하다.






몇 개월전 SK communications(SK컴즈)는 싸이월드 유럽 서비스를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발표에서 싸이월드의 다른 해외 서비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런데 이 발표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SK컴즈의 모회사인 SK텔레콤은 해외 특히 중국 시장에 대한 공격적 진입을 발표했다. 의아한 느낌이다. 한쪽에서는 웹 서비스를 철수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격적으로 진출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심지어 몇 주전 SK텔레콤은 중국 현지 게임 업체를 인수합병할 계획이 있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싸이월드는 2008년 현재 미국, 중국, 대만, 베트남을 위한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서비스 중 어떤 것도 괄목할만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유럽 서비스는 이미 철수를 결정했고 글로벌 서비스 리스트에서 빠져 있다. 미국 서비스를 강화한다며 SK컴즈의 전 대표이사인 유현오 사장을 보내기도 했지만 실상 유현오 사장이 미국으로 간 이유는 싸이월드 USA의 강화와 별 관련이 없는 것 같다. 그보다 SK텔레콤의 인터넷 사업에 대한 전략 변화와 더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SK텔레콤이 과거에 그랬듯 자회사에 대한 직접적 개입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대놓고 이야기하자면 내부적인 권력 다툼이 문제의 핵심인 듯 하다. SK텔레콤의 권력 다툼과 SK텔레콤이 자회사의 사업에 개입하는 이야기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일단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 대부분은 대외비를 전제로 습득한 것이라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내가 이런 언급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드러나는 현상이 있다. SK C&C가 게임 퍼블리싱 사업을 접는다고 이야기한 지 한 해가 지나지 않아 SK텔레콤이 중국 게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 업체의 인수합병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하는 건 단지 그룹사의 커뮤니케이션 결여라고 좋게 이야기할 수 없다. 이런 사례는 매우 많고 그런 바보같은 삽질의 이유로 가장 타당한 것은 내부 권력 다툼이다. 이 정도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싸이월드 글로벌 서비스의 미래, 즉 해외사업의 미래는 불투명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부정적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 중 핵심적인 이유는 이 사업이 SK컴즈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SK컴즈 임원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매우 불쾌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몇년 간 사업의 진행 역사를 돌이켜 보면 SK컴즈의 사업은 결코 SK텔레콤의 인터넷 사업에 대한 사업 기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의 사업을 지켜보다 '더 이상 이렇게 내버려둬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이 생기면 일단 자회사의 사업을 축소하게 만든다. 그 이후 직접 개입하여 사업을 진행하거나 사업을 중단하고 매각해 버린다. SK텔레콤이 강력하게 지원했던 와이더댄닷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결국 독립 기업으로 1차 정리를 한 후 매각 절차를 거쳤다.


싸이월드 글로벌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다. 특히 웹 서비스 기획자나 IT 분야에 대한 분석가들은 서비스의 질이나 구성 형태로 싸이월드 글로벌의 미래를 예측한다. 좋게 예측하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싸이월드 글로벌의 미래는 예측하려면 SK텔레콤의 의지를 예측하는게 훨씬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SK컴즈가 뭐라고 하든, 분석가들이 뭐라고 하든 관계없이 SK텔레콤은 항상 그들의 관점에서 그룹사 관련 서비스들의 미래를 결정해 왔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개별적으로 진행되던 그룹사 소속 웹 서비스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지 않고 SK컴즈의 최근 구조 개편과 경영진 인사 조정에서 드러나듯 노골적으로 직접 개입하고 있다. 웹 서비스에 대한 인사이트가 부족한 이들의 개입은 결국 싸이월드 글로벌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할 수 밖에 없다.

싸이월드 글로벌 서비스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예측은 서비스의 사용성이나 호응도로 서비스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시간을 좀 더 두고 지켜보면 될 것이다.

최근 웹의 흐름은 OPEN ?

Posted 2008/02/26 23:33
어디서 글을 읽다 또 어디로 링크를 타고 갔고 그러다 까모님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아주 오랜만에 까모님 블로그에 간 것 같다. 오늘 쓴 글의 첫 문단이 이랬다,

"최근 웹의 큰 흐름은 'OPEN'이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서 매우, 아주, 자주 듣는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웹은 원래 그랬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치 '최근 한국 대중 음악의 흐름은 대중성 중심이다'라는 주장과 비슷하다. 원래 대중 음악은 대중이 중심 아닌가? 본질적 속성은 흐름 즉 트렌드와 차이가 있다.

물론 최근 웹과 관련한 각종 비즈니스 영역에서 오픈(OPEN)이라는 주제가 매우 자주 언급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해서 웹이 가진 고유한 속성인 '공개'와 '공유'의 속성을 트렌드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그건 원래 웹이 가진 속성이기 때문에 트렌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 예컨데 "최근 웹은 개인간 콘텐츠 교류에서 산업적으로 활용 가능한 대규모 콘텐츠의 공식적 교류를 가능케하는 'Enterprise OPEN'이라는 큰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다"와 같이 표현해야 한다.

우리, 기획자 특히 웹 서비스를 기획하는 사람들은 이런 큰 변화에 대해 민감하며 동시에 과학적으로 세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단지 변화한다고 이야기하며 미시적인 분석을 할 것이 아니라 거시적 분석 하에서 미시적 분석으로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 주제를 세분화하고 그 대상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때문에 기획자는 연구적 자세로 웹 서비스의 변화를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며 새로운 주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야 한다. "웹의 큰 흐름은 OPEN이다"라는 말은 결코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웹 서비스 기획자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너무 상위 영역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무자인 웹 서비스 기획자는 현실에 즉각 적용 가능한 주제를 내와야 한다.


ps : 까모님의 문장을 보고 이런 생각이 나서 적었을 뿐, 까모님의 글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또 하나의 글을 쓰게 만들어 준 까모님께 감사한다.

몇 주 전 국내외 소식통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가 야후를 인수합병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MS가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제안한 금액은 446억 달러, 현재 달러대 한화 환율로 40조원을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웬만한 세계적인 대형 제조업체 인수합병 금액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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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개적 제안이 있은 후 국내 언론은 경천동지의 상황이 온 것처럼 많은 기사를 생산했다. 특히 IT 업계에 대한 기사를 주로 다루는 언론사는 하루에 수십개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몇 주가 흐른 후 이런 식의 관련 기사가 생산되었다.

- MS, 야후!인수를 위해 칼을 들다
- 구글, 뭐든 이건 좋지 않다, 막자!
- 야후! 애매하게 반대하다.

3줄로 정리하면 지금까지 상황은 이렇다. 지난 2월 10일 야후! 본사의 이사진들이 회의를 한 후 MS가 제안한 금액이 너무 낮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MS는 야후!를 인수합병하고 싶다는 공격적인 의견을 제시했고 그 이후 바로 구글(www.google.com)은 공식적으로 인수합병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야후!의 이사회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한다'는 식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국내외 언론은 이런 소식을 다양한 루머와 함께 전파했다. 회사를 사고 파는 금액이 40조원을 가뿐히 넘는 상황이니 이건 정말 엄청난 "이슈"였다.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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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조원이라니... 정말 대단한 거래 금액이다. 평범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다. 기업 인수합병(M&A)을 많이 해 봤다는 사람도 이런 정도의 금액은 평범한 사람이 난데없이 로또 1등에 당첨되었을 때 느끼는 환상적인 금액이라고 했다. 거래 금액의 1%만 커미션(commission; 수수료)으로 먹어도 4천억원이다. 어쨌든 이 사건은 정말 굉장하다. 그런데 나는 이 사건에 무덤덤하다. 쇼하고 있네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북미의 언론 뿐만 아니라 한국의 언론 그리고 세계 각지의 언론이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만약 MS가 야후!를 인수합병하는데 성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고 소설을 쓰고 있다. 게다가 구글이 두 회사의 인수합병에 위기를 느껴 언론사 기자를 불러 "무슨 일이 있어도 막고 말겠다"고 공언한 이후 이 사건은 정말 빅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무덤덤하다. 하든가 말든가...


내가 무덤덤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이번 거래가 대개의 기업 간 거래와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차이의 핵심은 "사용자(user)"다. 이런 생각을 해 보자. 만약 삼성 그룹이 신한 지주 회사를 인수합병했다면 어떨까? 그 거래 규모는 엄청날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 산업적 변화 특히 삼성과 신한의 고객층 변화는 극심하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두 회사가 어떤 식으로 합병을 하든 사용자 즉 개인에게 극심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삼성과 신한 두 회사가 장악하고 있던 시장의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다. 언뜻 생각할 때 두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는 동일할 것 같지만 실제로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잘 이해할 수 없다면 이번 사건을 인용해 보자. MS 소프트웨어의 사용자와 야후! 서비스의 사용자가 동일할까? 워낙 큰 기업이고 그 대상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실제로 매우 다르다. 손쉽게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경우만 보자. 나는 MS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10개 이상 사용하고 있다. 윈도XP, 미디어 플레이어, 인터넷 익스플로러, 아웃룩 익스프레스 등등... 아마 10개도 훨씬 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야후! 웹 사이트를 방문하지 않고 야후!가 인수합병한 플리커(http://www.flickr.com/)과 같은 서비스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나와 같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게 내가 이야기하는 이번 거래가 갖는 문제는 핵심이다. 도대체 뭘 만들려는 거래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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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쉬운 비유를 해 보자. 삼성이 네이버를 인수합병한다면 삼성전자 램 가격이 오를까? MS의 야후! 인수합병은 내게 그런 의미다. 소프트웨어만 줄기차게 생산해왔고 인터넷에서 항상 실패만 했던 MS가(hotmail 인수합병이라는 시작부터 지난 10년 동안 했던 MS의 잘못된 사업에 대해 거론하면... 끝이 없다!!!), 오로지 인터넷에서 성장한 야후!를 인수합병하겠다고 공언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구글은 MS의 이런 행동에 대해 "독과점이 될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있다는데 구글은 바보짓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냥 내버려둬도 스스로 망하는 분위기인데 왜 그러나 싶다. MS와 야후!의 결합은 현재 의미에서 +1와 -1이 합치면 0이 되는 공식이라고 본다. 더 나아질 게 없는 두 회사가 환상의 콤비라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그런데 구글이 그런 결합에 대해 발끈하며 나서는 것은 구글 또한 멍청한 이해의 대열에 끼어들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구글은 아직도 MS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선진성과 야후!의 웹에 대한 진취성이 위협적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그 둘이 합치면 구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걸까? 구글은 한국인으로서 내가 이해하기 힘든 상당히 우둔한 결정, 특히 끼어들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MS가 야후!를 인수합병하더라도 최소한 2년 이상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특히 MS는 소프트웨어를 주로 생산, 판매하는 회사이며 야후!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판매하는 회사라서 그들의 인수합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변화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적을 것이고 변화는 느릴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MS는 이런 걸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바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해야 할 바"가 무엇일까? 살아 남아야 하는 길에 대한 것이다. 어쨌든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움직인다. 거대한 조직인 MS를 지키고 살릴 수 있는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멍청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합리적이며 최선의 판단이라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MS의 야후!에 대한 결정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MS와 야후!의 딜(deal)에 대해 무감한 편이다. 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한국이라는 시장(market)이고 그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웹 서비스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야후!코리아의 입지는 계속 축소되고 있고 이번 딜로 인해 확대될 가능성도 없다. 그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한국와 북미의 웹 서비스 연동성이 결여된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1997년 즈음엔 한국의 웹 서비스와 북미의 웹 서비스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0년여 시간이 흐른 지금 북미와 한국의 웹 서비스가 연동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가 이 거대한 기업간 거래에 대해 시큰둥한 이유는 이런 것이다. 거시적으로 이 사건은 분명 한국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지만 최소한 2년 이내 이 사건은 한국 웹 서비스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한국에서 별 의미도 없는 MS의 웹 서비스(msn.co.kr에 방문한 사람이 있나?)와 하락세인 야후!코리아(yahoo.co.kr의 최근 개발한 서비스가 뭔지 알고 있나?)의 서비스가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한국 사용자에게 갑자기 주목받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MS와 야후가 같은 회사가되든 말든, 나는 별 관계 없다. 내가 궁금하고 정말 관심 갖는 것은 오직 한 가지다,

"그래,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서비스를 줄래?"



한국의 웹 서비스는 이 질문으로 끝내야 하지 않을까? 세계 최고의 웹 서비스를 만드는 경쟁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왕이면 우리가 만든 서비스면 좋고!!! MS가 야후!를 먹는 말든 지금 당장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런 것 때문에 한국이 변방의 국가로 아직까지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도 한다만... 어쨌든... 우리에게 중요한 건 지금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 가다.

최근 만났던 세 분이 우연히 같은 이야기를 했다, "더 이상 새로운 소재가 없는 것 같다"



이 세 분은 서로 공통점이 없지만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들거나 발견해야하는 과업을 갖고 있었다. 한 분은 기존 회사를 운영하며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기 위해, 또 다른 한 분은 회사의 신규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한 분은 투자할 회사를 찾기 위해 새로운 웹 서비스를 찾고 있었다. 그 분들이 탄식처럼 내 뱉은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웹 2.0 이후에 많은 서비스가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 2년 간 나온 웹 서비스들도 특별하고 주목할만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은 심지어 새로운 웹 서비스를 위한 소재가 고갈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스스로 아이디어가 없는 것을 보면 소재의 고갈은 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금씩 자신의 상황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했지만 소재의 고갈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하는 것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는데, 그 동안 우리가 새로운 웹 서비스를 위한 소재를 탕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실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상상하기만 했고 그 과정에서 소재를 탕진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저런 것을 상상하고 그 상상 속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 판단해 버림으로써 소재를 써 보지도 못하고 날려 버리는 것 말이다.

새로운 웹 서비스를 위한 소재의 고갈은 소재 자체의 실현 가능성을 문서와 상상으로 끝내 버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상상한 것이 현실화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단지 상상하는 수준에서 소재를 사용해 버리고 또한 토론 수준에서 그 소재가 무의미할 것이라고 판단해 버린다. 그런 과정을 통해 현실화되는 소재는 별로 없고 논의되는 소재만 많아진다. 생각과 말로 소재를 탕진하는 건 전형적인 책상머리 기획자의 태도다. 작은 프로토타입(prototype)이라도 만들어 보고 "그 소재는 새로움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해한다. 그러나 머릿 속에서 생각하고 말로 이해하고 문서로 정리하며 끝내 버린 소재라면 그것이 의미없다 단정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새로운 웹 서비스를 찾는 사람들이 요즘 겪는 "소재의 고갈"은 사실은 실천력이 부족하거나 고민의 시스템에서 실천의 요소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기 갈등이지 현실이 아니다. 새로운 웹 서비스로 만들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방금 떠오른 소재 하나가 있다. 야밤에 글을 쓰는 '나'를 스스로 바라보며 내 상태를 기초로 이런 웹 서비스를 하나 생각해 봤다.

- 지금 시각 새벽 1시 30분. 나는 이 시간에 글을 자주 쓴다. 그런데 이 시간대에 깨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더구나 글을 쓰거나 뭔가 일을 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 그러나 또한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대에 깨어 있다.

- 이런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하나 만들자. 단 이 커뮤니티는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만 글을 쓸 수 있다. 웹 사이트도 이 시간대에만 열린다.

- 사이트 이름은 "night mate"로 하자. 도메인은 night-mate.com으로 하자.

- 주요 콘텐츠는 야밤에 잠 못드는 사람들과 연계된 콘텐츠로 구성한다. 콘텐츠 구성의 아이디어는 주요 키워드와 연관 키워드에서 찾는다. 예를 들어 네이버에서 "야식"으로 검색을 하면 관련 키워드로 "야식 배달", "야식 메뉴", "족발" 같은 것이 나타난다. 주요 콘텐츠 중 "야식"의 하위 메뉴를 "주변 야식 배달 식당", "야식에 가장 좋은 메뉴", "족발에 대한 고찰"과 같은 것으로 구성할 수 있겠다.

- 메인 페이지에는 현재 접속 중인 사람들의 목록이 보이도록 하자. 목록을 보기만 해도 어떤 이유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하자. 5가지 정도의 현재 상태를 나타내는 아이콘 - 불면증, 철야, 공부, 오늘만 우연히, 약속 - 을 만들자. 상태 표시를 통해 서로의 상태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고 메시지를 쉽게 주고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하자.

- 이 웹 서비스는 늦은 밤에 잠 들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이다. 늦은 밤은 감성이 자극되기 쉬운 시간대다. 느슨한 이성와 활발한 감성, 때문에 짧은 이야기로도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짧은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고안하자. 로그인이 필요없는 익명 게시판이 좋겠다.

위 메모를 쓰는데 정확히 7분 걸렸다. 이 간단한 메모를 끝내고 나는 제로보드나 phpBB, 텍스트큐브를 이용하여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PHP든 JSP든 Ruby든 자신이 쓸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그걸로 만들자. 심지어 Visual Basic으로 만들어도 관계 없다. 웹에 대한 건 웹 툴로 만들어야 한다는 편견부터 버리자. 프로토타입은 뭐든 빨리 만들 수 있는 것으로 하면 된다. 약 2~3일 정도면 프로토타입 사이트를 만들 수 있다. 이후 네이버, 다음 등 포털에 사이트를 등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메타 블로그나 평소 다니는 카페 혹은 메신저를 통해 아는 사람들에게 사이트를 소개하여 최소 100여 명의 최초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100명을 확보하지 못하면 평소 인간 관계의 척박함을 의심해 보자.

4주 정도 사이트를 운영해 보고 이 사이트를 크게 키울 수 있을 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사이트가 잘 운영되지 않고 방문자도 재미가 없다고 소리치면 그 때 "이런 소재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런 소재는 일단 기각할 수 있다. 아니면 만들어진 프로토타입을 기준으로 좀 더 세련된 콘텐츠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갖춘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문제는 상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해 보는 것이다. 그 이후에 이 소재가 정말 재미없거나 재미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물론 똥인지 된장인지 퍼 먹어봐야 아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만약 웹 서비스 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내가 "만들어봐야 안다"고 말하면 어떤 고객이 "아이구, 맞습니다"라고 응답할까. 그러나 매일 새로운 웹 서비스만 생각하고 사는 나조차 어떤 소재가 성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쌀로 밥을 할 수 있다는 건 모두 알고 있지만 쌀알로 예술품을 만든다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실제로 그런 일 - 조그만 쌀알에 시를 적거나 사람 얼굴을 그리는 예술가 - 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단지 어떤 소재만으로 상상하는 것은 소재를 탕진하는 행위다. 하나의 소재가 수백, 수천가지의 실천적 과제를 만들어 낸다. 그 과제 하나하나를 평가하고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 하나의 소재를 단지 하나의 과제로 바라보기 때문에 새로운 웹 서비스가 나오지 않는 것이고 그런 웹 서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소재의 고갈"이라고 탄식하는 것이다.

문제는 상상력과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 이야기 풀어내기)의 부족이지 소재의 고갈이 아니다. 소재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무궁무진하다.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새로운 웹 서비스를 기획하거나 찾는 분들이 "소재의 고갈"을 이야기하는 게 반드시 그들의 상상력 부족과 스토리텔링의 부족 때문은 아니다.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1990년도 후반 국내에서 IT 산업이 중흥할 때 수 많은 아이디어성 웹 서비스가 나왔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모두 인정하는 명제가 하나 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돈이 되지는 않는다"

비록 어떤 회사나 어떤 투자자가 재미있는 아이디어만 있어도 돈을 쏟아 붓겠다 약속하더라도 그 이야기의 진실은 사실 이런 것이다.

(순식간에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모을 수 있는)재미있는 아이디가 있으면 (그리고 수익 모델이 있어야겠지) 언제든 내게 알려 달라. 그럼 돈을 주겠다!

재미는 있는데 일년 동안 웹 사이트 운영해봐야 사용자 10만 명에 일일 방문자 1만 명 정도라면 수익성을 보장하는 웹 서비스가 아니다. 이 과제를 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소재의 고갈"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돈 쓸만한 소재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기도 있고, 돈도 잘 버는 웹 서비스를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데 그런 소재만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소재의 고갈 문제가 아니라 욕심이 과한 것이다.

요즘 인기 있다는 웹 서비스를 보면 수익을 제대로 거두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아니 없다. 유튜브, 디그닷컴, 플리커, 오커트, 판도라TV, 올블로그, 티스토리, 트위터... 국내외에서 지난 2년 사이 웹 2.0 서비스로 불리는 이런 류의 웹 서비스 가운데 자랑할만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업체는 없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을 뿐이다. 이들 중 어떤 웹 서비스도 전면적 유료화나 부분적 유료화를 단행한 업체는 없다. 기껏해야 '프리미엄 서비스' 정도의 이름으로 좀 더 나은 기능이나 저장 공간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돈을 조금 벌고 있을 뿐이다.

이 업체들 중 어떤 업체는 좋은 수익 모델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은 일일 방문자나 수집한 콘텐츠의 숫자로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을 뿐 실제 투입 비용 대비 수익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게 잘못된 걸까? 아니다. 새로운 웹 서비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인기를 끄는 데 걸리는 시간과 투입되는 자원도 막대하다. 그런 서비스가 실질적인 수익을 거두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새로운 웹 서비스, 창의적인 웹 서비스가 나오지 않는다는 탄식은 현실이다. 그러나 그 탄식의 이유가 더 이상 새로운 소재가 없기 때문은 아니다. 굳이 탓하자면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의 부족을 이야기할 수는 있다. 또한 시대가 변하면서 단지 재미있는 아이디어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재미도 있고 수익도 동시에 발생하는 환상적인 소재는 처음부터 없었다.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다. 미래에도... 아마 없을 것이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도토리라는 사이버머니를 통해 수익을 발생시키며 SK컴즈의 주요 수익원이 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SK컴즈가 싸이월드를 인수하기 전 2년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2년 동안 싸이월드는 막대한 투자 비용을 감수하며 마이너스 수익을 감수해야 했다. 웹 서비스의 비즈니스는 그런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돈을 벌어대는 웹 서비스는 없다. 그러나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막대한 트래픽을 확보할 수는 있다. 이게 중요한 것이다. 바로 돈 버는 건 힘들지 몰라도 사용자의 관심을 끌고 그들의 일상 생활을 장악하는 웹 서비스는 지금도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다른 웹 서비스를 비교 분석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보길 원한다.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부정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웹 서비스가 없어. 이제 더 이상 나올 소재가 없나봐"라고. 과연 2007년 12월,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웹 서비스, 루키가 나오지 못하는 게 그런 이유 때문일까? 아니면 상상력과 실천력의 부족 때문일까? 대답은 여러분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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