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Soft의 아이온 1주년

Posted 2009/11/11 10:21
작년 10월 경 OBT(Open Beta Test) 때 재미 삼아 시작했던 아이온을 벌써 1년이 넘게 즐기고 있다. 게임사 개발사의 웹 개발 컨설팅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3D 게임에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 거부감이라는 게 게임에 대한 편견이 아니라 신체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도무지 1시간을 모니터를 바라 볼 수가 없었다. 어지럼증과 구역질이 나서.

2006년 게임 개발사 컨설팅을 하던 당시에도 그 회사의 많은 임직원들이 와우(World Of Warcraft)를 즐기곤 했는데 나도 따라서 해 보려다 사방으로 정신없이 회전하는 시점 때문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 아이온을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무난하게 그 어지럼증과 구역질을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게임을 즐기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한 많은 경험을 했다. 폐인이라고 불릴만큼 레벨업을 하는데 집중한 적도 있었고, 게임을 하지 않고 채팅만 하루 종일 한 적도 있었다.

또한 산업적인 관점에서 크게 성공한 게임 하나가 작지만 의미 있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도 직접 느끼게 되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과 게임 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체 간의 지속적인 갈등도 직접 보게 되니 연구 자료를 통해 느끼던 것과는 또 다른 관점이 생기게 되었다. 3년 전 게임을 제작하던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그들이 나 혹은 게임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온을 1년간 즐기며 이런 저런 개인적인 연구와 조사를 하며 결국 3년 전에 내가 바라 봤던 게임과 웹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게임 개발자들은 게임과 웹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으며 웹을 통해 게임에 뭔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곤 했다. 나는 그런 게임 개발자들과 대화를 하며 "게임 스피어(Game Sphere)와 웹 스피어(Web Sphere)는 게임이 갖는 사회성에 의해 단절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즉 게임의 사회성이 낮을수록 게임과 웹의 단절 정도는 크다. 반면 게임의 사회성이 높을수록 게임과 웹의 단절 정도는 점차 낮아 진다. 특히 MMORPG와 같은 경우 웹은 게임의 내용을 받아와 널리 배포하는 역할을 하며, 게임은 웹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아이온 1년을 경험하며 그런 예측이 실현되는 걸 보았고 기뻤다. 아이온의 1년 전에 비해 훨씬 많은 콘텐츠가 추가되어 있는 상황인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중 매우 자주 게임 팁이나 퀘스트 해결을 위해 참조 페이지로 아이온 홈페이지의 검색을 이용하게 된다. 이건 과거와 또 다른 현상이다. 과거의 다른 게임의 경우 팁이나 게임 가이드 역할을 특정 팬 페이지나 개인 홈페이지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아이온은 "파워북"이라는 변종 위키위키 시스템을 도입하여 게임과 관련한 대부분의 내용을 아이온 자체에서 검색하도록 하고 있다. 초기 콘텐츠가 적었을 때 아이온 홈페이지의 검색 기능은 미약했지만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많은 사람들이 게임 내에서 누군가 퀘스트나 팁에 대해 질문할 때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보세요". 초기에 "아이온 인벤에 가서 보세요"라는 대답이 많았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아이온의 초기에는 리지니, 리지니2, 와우와 같은 MMORPG를 사용했던 사람들이 많이 접속했고 이들은 나름의 불만을 드러내며 또한 자신들의 경험을 게임에 적용시켰다. 파티 플레이에서 각 클래스의 역할을 정의하고 아이템 분배 규칙을 정하는 것은 아이온만의 특징적인 모습 보다는 과거 다른 게임에서 경험했던 것을 많이 도입하는 느낌이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갈등이 생기기도 했으나 대개의 경우 게임 내에서 해결되었다. 그러나 게임 내에서 비공식적으로 다뤄지던 규칙은 홈페이지의 게시판이나 파워북을 통해 공식화되는 과정을 거치곤 했다.


나 또한 아이온의 한 사용자로서, 그리고 게임의 문화 사회적 현상에 대한 관심의 일환으로 아이온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려고 한다. 몇 회가 될 지 모르겠지만 연재 형식으로 게임과 웹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뻔히 아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 '변화한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Posted 2009/06/03 06:39
노무현이 죽었다. 조갑제를 비롯한 쓰레기들의 이야기를 빌자면 '자살'이다. 맞다. 비록 그의 죽음 시점에 경호관들이 거짓 진술을 했다는 의혹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가 스스로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렸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듯 하다. 자살이 맞다.

노 무현을 싫어하고 저주했던 자들은 바로 이것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을 부각시키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의미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자들은 그저 노무현의 자살을 부각시키며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냈던 자가 자살이라니 말이 되는가? 결국 자신의 부정부패를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라지게 만들고 싶었던 것 아닌가? 하는 꼴이 열사니 뭐니 하며 스스로 목숨 끊었던 과거의 자들과 뭐가 다른가?" 라고 말이다. 사실 조갑제 류의 인간들은 철퇴를 맞을까 겁이나 말을 못했겠지만 "노무현이나 박종철이나 이한열이나 뭐 다를 게 있나? 한결 같이 멍청하게 목숨이나 끊은 놈들!"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들도 알겠지, 그 따위로 이야기했다가는 자신들의 지지자조차 고개를 돌릴 것이라고.


어쨌든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무현의 죽음을 전해 들은 지난 5월 23일 아침 7시 30분, 한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386세대의 신화가 끝났구나' 노무현의 죽음으로 386 세대가 그토록 바랬던 소위 '진정한 민주주의 수령의 통치'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386 세대는 나보다 10~5세 정도 앞선 세대다. 내 누님 세대 정도다. 그들은 교복 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교조 세대도 아니다. 그들은 사회 생활을 할 즈음에 1987년 6월 항쟁을 경험한 세대거나 그 이전 세대다. 그러니까, 현재 40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가 386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들의 선배라고 볼 수 있고 또한 그들이 지지하고 염원했던 시절을 같이 꿈꾸었던 사람이다.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4.19 세대라고 볼 수 있고 그래서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386 세대에게 그야 말로 '꿈의 실현'이었다. 자신들이 목숨 받쳐 받들 수 있는 대통령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수령(首領)이었다.


여기까지 내 글을 읽은 사람은 이미 이해하겠지만 여기 표현하는 '수령(首領)'은 사전적 의미의 그것이 아니다. 맞다, 북한에서 이야기하는 바로 그 '수령'이다. 노사모를 비롯하여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열렬히 환호했던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을 그들의 수령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북한의 '수령'에 대한 많은 글을 읽어 보았고 대학을 다니던 시절 3년 동안 '수령'이란 단어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공부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단어의 의미는 모호하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나는 '수령'이라는 단어를 가부장적 권위와 아버지의 친근함 그리고 친구로써 순수함을 가진 어떤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수령'이라는 단어는 이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가 있다.

' 수령'은 또 다른 의미에서 모든 것에 대한 보호와 끝없은 믿음이다. 수령이라는 의미를 가지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항상 버리고 또한 항상 자신의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 어떤 순간이 아니라 항상 그런 마음 가짐을 유지하고 결정적인 순간 또한 그 믿음이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수령'은 단순히 어떤 정치적 지도자가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걸고 가족적인 정치적 관계를 유지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수령'의 헌신성을 길게 설명할 수있지만 영화 <인스팅트(instinct)>를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고릴라 '실버백'이 왜 인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향해 뛰어 드는 지 이해한다면 '수령'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는 노무현의 죽음을 고릴라 '실버백'의 죽음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실버백'은 고릴라가 아닌 주인공(안소니 홉킨스 분)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인간 무리로 뛰어 들어 스스로 죽는다. 그러나 결국 '미국민'인 주인공은 자국으로 공수되고 정신병동에 갖힌다.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이 영화가 얼마나 노무현의 죽음과 닮아 있는 지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노무현은 386세대의 아이콘이었다. 386세대, 그러니까 당시 30대이면서 80년대 대학,사회생활을 했고, 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의미한 그 단어에 '노무현'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미 늙어 버린 김대중과 또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386세대에게 '노무현'은 시대의 아이콘이자 형님이자 친구이자 또한 '수령'이었다. 아마 노무현도 그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 같다. 지난 2002년 노무현이 흘렸던 눈물이나 그가 대통령 재임 시절 수 없이 외쳤던 386 세대에 대한 지지를 보면 그가 진정 '수령'으로서 386세대를 바라 봤음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북한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수령'이 되지 못했다. 될 수 없었고 되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결국 그는 자신을 대통령 자리까지 올려줬던 386세대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갔다. 아마도 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대통령 직을 그만 두고 봉하 마을로 내려가 상생의 정치를 꿈꾸던 짧았던 10개월이 아니었던 가 싶다. '수령'으로서 자신의 직함을 버리고 그냥 아버지로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봉하 마을의 주민으로서 살았던 그 짧은 시절이 아니었던 가 싶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시점이 되자 노무현은 '수령 노무현'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강요받게 된 것 같다. 소수의 지지자와 극심한 압박감은 그가 선택하지 않았던 '수령 노무현'의 마지막 길을 걷게 한 것 같다. 결국 그는 '수령 노무현'으로써 삶을 종결햇다.

보라! 그가 죽자 얼마나 많은 자들이 그를 위해 고개를 숙였는가? 보라! 그가 자신의 자존을 지키자 얼마나 많은 자들이 그를 지지하지 않았음을 후회했는가? 보라! 그의 시신이 한 줌의 재로 변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는가?

다 거짓이다. 386세대의 '수령'으로서 노무현은 이미 2002년에 끝났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노무현은 수령으로서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 그러나 사람들 특히 386세대들은 노무현이 여전히 자신들의 '수령'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그런 바람과 달리 386세대들은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곧장 자신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 이후 노무현은 외로웠고 그 많은 공격을 스스로 견뎌야 했다. 386세대가 뽑았던 대통령 노무현을 그들은 지켜주지 않았다. 개새끼들.


노무현은 죽었다. 다시 살아날 수도 없고 노무현의 죽음이 더 이상 미화되거나 또 다른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도 없다. 노무현의 죽음과 함께 386세대의 꿈도 끝났다. 그들의 신화도 끝났다, 완전히. 그들이 '수령'이라 믿었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가장 많이 비판하고 욕했던 노무현이 죽음으로써 386 세대는 그들의 신화를 스스로 버렸다. 386 세대가 지금 노무현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은 대부분 자신의 추억과 기억과 절망에 대한 탄식일 뿐이다. 자신들의 신화에 대한 아쉬움 뿐이다. 노무현이라는 신화에 대한 애닳음 뿐이다. 그들은 노무현의 죽음이 슬픈 게 아니라 자신들의 아름다운 신화가 사라진 것이 슬픈 것이다. 씨발놈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움과 함께 386 세대의 비겁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무현을 위해 죽은 자 어디 있는가? 그들은 그저 노무현을 아이콘으로 만들고 존경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차라리 노무현을 좋은 아저씨, 할아버지로 기억하는 고딩들의 울음이 반갑다. 노무현의 영정 앞에서 통곡하고 울부 짖으며 그를 그리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왜 지키지 못했는가? 대통령이라서? 대통령은 공직이라 지키지 않아도 되었나? 그냥 욕하면 되었나? 니미랄 경제가 그토록 중요했나?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나는 노무현의 죽음이 반갑다. 첫째,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이상과 괴리된 세상에 살지 않아도 되니 반갑다. 둘째, 그가 싸워서 절대 이길 수 없는 개 엿 같은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의 세상에서 고통 받지 않아 반갑다. 셋째, 오리 키워서 유기농으로 농사 지어봐야 결국 빚만 지고 말텐데 농사 지으려고 노력하시려니 걍 편한 세상에 사시는 게 반갑다. 아...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그가 살아서 웃음 지으며 우리를 만나는 모습보다 더 행복한 게 있겠나. 그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의미에서 그의 죽음은 반갑다. 개 쓰레기 같은 386 세대의 버리고 싶은 끄나풀에 묶여 있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저주하고 자신을 거부했던 그 따위 사람들이라면 버리는 게 낫다.


" 노무현님, 당신도 아시잖습니까. 당신이 유명을 달리 하셨을 때 가장 먼저 달려 온 사람들이 누굽니까? 봉하 마을의 주민들이었고, 대구, 부산, 진주, 포항에 있던 당신을 생각하던 경상도 깽깽이들 아닙니까. 그리고 한참 지나서야 쓰레기 같은 정치인들이 왔죠. 뭐 돌아가신 당신은 잘 모르시겠지만 현실은 그랬습니다."


386세대의 '정치적 수령'이었던 노무현은 갔다. 그와 함께 386 세대의 정치적 역정도 끝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정치적 아이콘으로 내세웠던 노무현의 자살과 함께 386 세대의 정치적 의미 또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더 이상 혁신과 과거의 노력은 의미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386세대 니들한테 더 이상 노무현은 모범이 아니라고!"


난 91학번이다. 1991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내 이전 세대가 386 세대다. 내 선배들 그러니까 386 세대라는 형님 누님들에게 묻고 싶다. 노무현의 영정 앞에서 그토록 서럽게 울던 형님, 누님들에게 묻고 싶다.

"노무현을 누가 죽였나??

일단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386 세대라는 인간들이 해 줘야 할 것 같다.

당신들이 대답하면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 지 우리가 하겠다.
노무현을 그저 좋아했던, 노무현 아저씨, 노무현 할배를 좋아했던 우리가 대답하겠다.
어린 시절 동네마다 하나 이상씩 꼭 있던 이발소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머리를 다듬으려면 당연히 근처 미용실을 찾는 요즘 문득 궁금해졌다.








그 때는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용실이라는 공식이 있었다. 잘 나가던 시절에 이발사들은 인정 받는 직업 중 하나였다. 동네에 이발사가 3명 정도 되는 제법 규모가 큰 이발소도 있었는데 언젠가 쌀집으로 바뀌더니 지금은 수퍼마켓이 되어 있다.

한동안 남자들이 머리 다듬을 곳을 찾지 못해 헤매고 다니더니 이젠 자연스럽게 미용실로 들어 간다. 그 변화의 시기에 나는 머리를 제법 길렀다. 쑥스러워서 몇년동안 미용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점차 사라져가는 이발소를 찾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난다.



이발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라진 이발소들은 목욕탕이나 싸우나에 가면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에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때는 자기 가게를 갖고 이발소를 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새롭게 생겨난 뺑뺑이가 쌍으로 돌아가는 - 간혹 뺑뺑이가 대여섯개씩 달려 있기도 한 - 이발소는 무엇일까? 퇴폐이발소다. 거기에 머리 다듬으러 들어가면... 바보다.



가끔은 키가 작아서 이발소 의자 팔걸이 사이에 나무 판자(혹은 빨래판)를 올려 놓고 그 위에 올라 앉아 머리를 깍던 시절이 그립다. 머리 움직이지 말라고 호통을 치던 아저씨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어찌나 머리를 세게 감기던지 눈물이 핑 돌던 것도 생각난다.

이미 손님이 있어서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이발소 주인의 부인이든가 아니면 애인일지도 모를 여종업원이 얼굴에 팩을 하고 누워 있는 손님을 맛사지하던 장면도 떠 오른다. 그걸 보며 괜히 부러움을 느끼던 것도 기억난다. 손가락 끝을 딱딱 소리나게 뽑아대며 안마하는 게 얼마나 신기하던지 어머니께 시전했다가 손가락 부러뜨린다고 뺨따구 얻어 맞았던 것도.

 
오늘도 시내에 가면 한집 건너 한집 쌍으로 돌아가는 뺑뺑이를 보며 이발소만의 특이한 냄새를 떠 올린다. 이발소는 미장원과 다른 그런 색깔이 있는 곳이었는데 이젠 안마나 받으러 가는 그런 곳이 되어 버렸구나.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어느날 나를 끌고 남포동 어딘가의 이발소로 데리고 가셨다. 대단히 크고 화려한 이발소 인테리어에 눈이 휘둥그레 정신이 없었는데 어머니가 이발사에게 재빨리 얘기하셨다, "우리 아들인데 멋지게 해 주세요" 보통 이발소보다 5배는 비싼 요금을 지불하고 나온 후 어머니가 그러셨다, "이제 그놈한테 꿀릴 것 하나도 없다, 니가 더 멋있다" 며칠 전 어머니는 전교 1,2위를 다투던 라이벌 A모군이 그 이발소에서 머리를 했다는 소릴 듣고 분기탱천하여 나를 여기로 데리고 오신 것이다. 참 힘든 시기였는데 어머니는 빚을 내서라도 아들을 꿇리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런 걸 모르는 나는 그저 즐거웠다.
오늘 한 일간지 웹 사이트의 기획을 하는 분과 만났다. 현재 웹 사이트에 대한 이야기와 새로운 수익 모델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몇 가지 새로운 웹 서비스를 알려줬다. 후반부에 이야기했던 한 아이디어를 정리해 본다.






일단 이 아이디어는 날밤님에게 바친다. 몇달 전 그가 GPS Logger를 사용한 웹 서비스를 만든 후 상담 요청을 해서 만난 적 있는데 그 때 했던 이야기를 이번에 써 먹었기 때문이다.



1. 이야기의 출발

컨설팅을 받으러 온 한 일간지 웹 사이트(이하 신문사닷컴)에서 새로운 포맷과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투자할 금액도 그리 많지 않고 현재 운영 중인 웹 사이트의 방문자도 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도 자원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다량의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니 그 자원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혁신은 해야 한다. 이럴 때 동네 북처럼 거론되는 웹이다. 웹은 싸니까, 웹은 쉬우니까, 웹은 혁신적이니까... 기타등등의 이유를 붙여 웹을 통해 큰 비용을 쓰지 않고 효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길 원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요구를 받아 들여야 한다.

한탄스러운 상황에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적은 비용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효과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다. 이럴 때는 문제 의식 자체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2. 딜레마

문제는 '비용을 가급적 쓰지 않고' 또한 '현재 상태를 유지하며' 게다가 '혁신'까지 하고 싶다는데 있다. 경제학적으로 딜레마다. 투입되는 자원이 없는데 산출물의 질이 높아지는 경우는 비리나 삽질이 연루된 경우 외엔 별로 없다. 따라서 비용을 가급적 쓰지 않고라는 전제가 틀렸다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질문을 바꿨다,

"소요되는 비용에 비해 활용되지 못하는 부분을 발견하여 혁신할 수 있는 방법은?"

비용이 소요되기는 하지만 결과물이 비용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상품으로 전환될 수 있음에도 부주의나 무관심에 의해 버려지는 가치를 재 발견하겠다는 말이다. 이 지점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신문사닷컴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모든 콘텐츠의 생산자인 '기자'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많은 기자를 만나며 그들이 했던 이야기와 내가 블로그를 통해 경험했던 많은 기사 작성 사례, 신문사닷컴의 고민을 종합하여 머릿속에서 한참 굴린 끝에 이런 한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나의 기사를 쓰기 위해 기자들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움직이는데 기사에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거나 부수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좋다, 뭔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많이 움직인다는 것이 아이디어의 출발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3. 아이디어 만들기

하나의 문장을 여러 개로 쪼갰다.

- 기자가 하나의 기사를 쓴다
- 여러 사람을 만난다, 다양한 방식으로
-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동한다
- 비정기적으로 여러 곳을 이동한다
- 어떤 장소, 어떤 시간에 어떤 사람을 만난다

쪼갠 문장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이 문장들을 어우르는 하나의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다. 곧 하나의 아이템이 나왔다, "지도(map)" 몇 가지 다른 아이템이 떠오르긴 했지만 지도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지도에 뭘 표시해야 하지? 이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아마도 시나리오'를 사용한다. 실제 구현되기 힘들더라도 '아마도'라고 이야기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가 움직인 경로를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가 만난 사람을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의 메모를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가 쓴 기사를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도에 기자가 찍은 사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에도 기자가 먹은 음식을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기자가 작성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것이다. 이런 콘텐츠가 지도 위에 매핑될 수 있다면 그것에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콘텐츠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 그 지역에 대한 코멘트와 링크
- 그 지역에 대한 사진과 동영상
- 기자가 만난 사람에 대한 추가 정보
- 기자가 방문한 지역에 대한 '동감' (나도 방문해 봤다)

좋다, 이 정도면 지도라는 콘텐츠 위에 매핑할 또 다른 콘텐츠의 방향은 대략 잡혔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도대체 어떤 기자가 취재 활동을 하며 이런 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 기자가 무슨 관광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기자에게 이런 정보를 일일이 기록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4. 사람에 대한 생각

내가 새로운 웹 서비스를 기획할 때 가장 먼저, 가장 오랫동안 고려하는 것은 '사용자의 편리함'이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지도 위에 멋진 정보를 기록하고 싶어도 그런 정보를 기자가 일일이 기록해야 한다면 기자에게 매우 불편한 서비스다. 콘텐츠의 제공자인 기자 자신이 불편하고 귀찮은 서비스를 이용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돈이 더 생기는 것도 아닌데 기자들이 이런 서비스를 위해 헌신할 까닭이 없다.

그렇다고 데스크(편집장)가 이런 콘텐츠를 기록하도록 기자들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기자의 본분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것이고 뉴스를 작성하고 보도하는 것이지 그 주변의 콘텐츠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기자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데스크는 정신이 나갔다고 할 것이다. 결국 기자들에게 뭔가 해 주길 바래서는 안된다.

그럼 포기? 아니다. 고민을 좀 더 해 보자. 기자들이 뭔가 적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바로 그 때 떠 오른 것이 'GPS Logger'다. GPS는 위성을 통해 현재 위치를 추론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GPS Logger는 GPS 기록을 저장하는 작은 기계를 말한다. 작은 MP3 플레이어 정도 크기의 GPS Logger를 켜고 이동하면 이 기계는 각각 다음과 같은 정보를 기록한다,

- 현재 위치, 시간, 이동 속도, 고도

게다가 이 기계 중 싼 것은 몇 만원도 하지 않는다! 비싸봐야 10만원이다!




5. 서비스 구현

기자들에게 GPS Logger를 주면 된다. 가방에 넣고 다니라고 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회사에 돌아오면 GPS Logger를 아르바이트생에게 던져 주라고 이야기하면 된다. 아르바이트생은 GPS Logger를 컴퓨터에 연결해서 기자가 움직인 경로를 컴퓨터에 저장한다. 기자들에게 직접 서버에 GPS Logger를 업로드하라는 것은 가혹하다. 아르바이트생을 쓰자. 물론 땡땡이를 친 기자라든가 사생활 보호를 주장하며 찜질방이나 안마를 한 기자들이라면 직접 입력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그럼 구멍난 시간은? 어쩌면 이 서비스는 신종 기자 감시 시스템이 될 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데이터는 지도 서비스에 매핑되어 기자의 하루 경로를 지도 위에 표시하게 된다. 나중에 지도에 접속한 기자는 그 시간대에 만난 사람들을 직접 입력할 수 있다. 기자들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의 의미로 지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며 나중에 이 정보는 기자들의 '취재 수첩'으로 동작한다. 이 정보 중 일부는 사용자에게 공개되고 이 서비스는 신문사닷컴 메인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노출된다,

"Repoter's Road Map"



6. 그림 그리기

이야기를 하는 중 수첩을 꺼내서 웹 사이트의 구현 모습과 구현되어야 할 콘텐츠, 개발해야 할 과제를 그림으로 그렸다. 말로만 듣고 잘 이해를 못하던 것도 간단한 그림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중에 "다른 기자들의 로드맵 보기"라든가 "관련 기사 보기"와 같은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다.

비주얼리제이션(Visualization)은 아이디어를 설득하고 구체화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매우 훌륭한 방법이다. 특별한 도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연필과 종이가 있으면 된다. (그린 그림은 귀찮아서 생략)



7. 종합적 사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걸린 시간은 2분 정도. 글을 길게 썼지만 생각하는데 걸린 시간은 몇 십초 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디어는 종합적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지 순차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종합적 사고는 '똥 누며 담배 피며 휴대전화로 게임하며 숨쉬고 눈 깜박이며 침 넘기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동시에 다섯 가지 이상의 일을 하고 있지만 똥 누는 것과 눈 깜박이고 침 넘기는 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종합적 사고로 아이디어를 내 놓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디어를 내 놓은 구체적인 고민은 한 두 가지지만 나머지 몇 가지 고민은 부지불식 간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종합적 사고는 타고 난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이런 매쉬업(mash-up) 형태의 아이디어는 많은 토론과 종합적 사고를 통해 나올 수 있다.


물론 이 아이디어는 헛점이 많다. 또한 내 이야기를 들었던 그 회사가 이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아이디어는 위대하지만 구현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똥이다.

신문사닷컴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웹 서비스를 이야기한 후 그 아이디어를 관철시키기 위해 필요한 다음 과정을 말했다. "비전의 제시"와 "효과의 확신"이 그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재미있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그 아이디어가 돈이 되나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래서 아이디어는 항상 사업의 비전과 그 아이디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효과를 확신시켜야 한다. 이런 생각 또한 종합적 사고의 일부다.

나는 이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며 "Repoter's Road Map"을 API로 제작하여 제휴사 웹 사이트에 공급하고 개인 블로그의 widget으로 공급하면 신문사닷컴으로 향한 트래픽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증가하는 트래픽은 광고 수익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런 새로운 시도를 미디어를 통해 홍보하여 업계의 주목을 받고 그 주목을 광고 수익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합적 사고로 아이디어를 낸다면 아이디어 자체의 완결성을 아이디어 이상의 영역에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일반 사업의 영역이다. 만약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면 아이디어의 후반부에는 반드시 사업적 고려가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방송사의 IPTV 포털 운영

Posted 2008/11/10 13:56
메가TV와 같은 IPTV에 접속하면 각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주요 메뉴가 나타나는데 앞으로 KBS, MBC, SBS 등 공중파 방송사는 자신의 고유 포털을 따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KBS는 방송사 공용 포털을 주장했다고 한다.








현재 메가TV를 이용하고 있는데 접속하면 나타나는 각 공중파 메뉴 중 SBS를 선택할 경우 다른 채널로 이동하여 SBS 고유 페이지가 나타난다. 반면 KBS, MBC, EBS 등은 메가TV의 메뉴 속에서 각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 SBS를 선택할 경우 로딩 페이지가 5초 정도 나타난 후 SBS IPTV 포털로 연결되는데 현재 수준으로는 사용성에 불편함이 있다. 특히 메가TV의 다른 콘텐츠를 시청하려면 SBS 포털 페이지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SBS 콘텐츠에 접속을 하지 않게 된다.

물론 이 문제는 페이지 전환 기술의 발전과 IPTV 수신기(셋톱박스)의 성능 향상으로 일부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가TV를 통한 통합 콘텐츠 소비를 지향하는 사용자에게 불편한 인터페이스가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각 공중파가 IPTV 내에 포털을 운영할 경우 'TV를 켜고 채널을 선택한 후 콘텐츠를 선택'하는 안그래도 복잡한 IPTV 인터페이스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각 채널의 유료화도 상당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IPTV에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 다수 업체들(Contents Provider)은 웹 사이트와 달리 IPTV에 제공되는 콘텐츠를 하나의 유료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다. 실제로 케이블TV에서 시리즈로 방영되고 있는 외화나 미니시리즈가 IPTV에서 한 편 당 몇 백원에서 몇 천 원에 유료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더하여 공중파가 IPTV에 포털을 구축할 경우 각각 요금을 부과하게 될텐데 사용자들에게 과도한 지출을 요구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메가TV와 같은 IPTV 서비스 공급업체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패키지 상품 형태의 통합 과금 서비스를 제공하겠지만 한 달에 1만 원 가까운 돈을 내고 관심있는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 또 돈을 내야 한다면 과도한 수익 챙기기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월 정액 요금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IPTV 콘텐츠가 증가해야겠지만 콘텐츠 공급업체의 수익에 대한 큰 기대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 관련 기사 : IPTV, KBS도 유료화

웹 기획자 되기

Posted 2008/11/06 04:11
1995년 웹을 처음 접한 이후 13년 간 웹과 관련된 일을 하며 나를 부르는 호칭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런데 그 이름 중 내 마음에 드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웹에 관심을 갖던 초창기 학생이었던 나는 웹이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와 브라우징을 통한 손쉬운 콘텐츠 입수에 흥분해 있었고 그것을 전문 잡지나 신문 등에 기고를 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책을 두 권 쓰기도 했는데 그 이후 더 많은 잡지에 글을 썼다. 당시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테크라이터'라고 불렀다.





몇 년 후 졸업을 하고 웹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 회사에서 새로운 웹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했다.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는 나를 '웹 마스터'라고 불렀다. 이후 전망을 다소 수정하여 신규 사업에 걸맞는 웹 서비스를 발굴하고 조직하는 일을 했는데 사람들은 나를 '신규사업기획자'라고 불렀다. 또 몇년이 지났고 나는 두 군데 정도의 회사에서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 회사의 사장과 협의를 하여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웹 서비스를 총괄 기획, 개발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 때 나에 대한 호칭은 따로 없었다. PM(Project Manager)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실제 PM은 따로 있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사업본부장'이라고 불렀는데 그것도 적절하지 않았던 것이 새로운 웹 서비스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실제 개발의 핵심적인 부분에 개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3년 간 나는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드려는 사람들을 돕고 조언하며 개발의 방향을 제시하는 '웹 서비스 컨설턴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제대로 된 호칭은 아닌 것 같다. 컨설턴트라는 직업의 정의를 따르자면 조언과 교육의 역할이 중요한데 나는 실제로 새로운 서비스의 개발을 핵심 위치에서 지도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웹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만 어떤 순간도 나의 정체성을 정확히 표현하는 호칭을 들어 본 적 없다. 바보같이 들릴 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직업의 정체성이 뭔가 고민하고 있다.


10여년 전 '웹 마스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한 적 있다. 그들은 웹 마스터라는 직업의 정의와 해야 할 일, 미래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했다. 그런데 토론 중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웹 마스터 모임이라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참석자들은 웹 마스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웹 사이트 개발도 웹 마스터 중심이어야 하고, 운영도 웹 마스터 중심이어야 하고, 마케팅도 그렇고, 프로모션도 그렇고... 모임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발표자들에게 질문을 했다, "혹시 이 모임이 수퍼 히어로 모임이었나요?" 그 모임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

당시 웹 마스터라고 하면 웹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프로그래밍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운영도 하는 그런 역할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도 프로그래머가 있었고, 디자이너도 있었고, 기획자도 있었고, 마케터도 있었고, 프로모터도 있었고, 경영진도 있었다. 그럼 웹 마스터는 무엇인가? 시간이 흐른 후 '웹 마스터'라는 직종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시절을 돌이켜 볼 때 웹 마스터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릴 수 있었다. 소규모 영세 웹 사이트를 운영하는 신생 기업에서 웹과 관련한 전반적인 사항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웹 마스터'라고 불렀던 것이다. 웹의 초창기에는 하나의 웹 사이트를 만드는 것을 한 개인이 해 낼 수 있는 환경이었다. 나 또한 몇몇 웹 사이트를 혼자 만들었고 혼자 운영했다. 야후!와 구글의 초기 버전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에는 혼자 혹은 소수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웹 사이트나 웹 서비스가 매우 많았다.

그러나 웹이 산업화되고 웹 서비스의 규모가 커지면서 혼자 만들 수 있는 웹 서비스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웹이 산업화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능력 이상이 필요한 영역이 점점 늘어간다는 소리며 하나의 웹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웹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려는 모든 회사가 웹 서비스 개발 인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기존에 다른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가 웹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대하려는 경우도 매우 많았다. 이런 회사의 경우 웹에 대한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새로운 인력을 뽑자니 웹과 자기 회사의 사업적 관계를 확신하기 힘들었다.

이런 요구에 의해 웹 사이트나 서비스를 대신 만들어 주는 웹 에이전시 산업이 부흥하기도 했다. 웹 서비스가 정교화되고 복잡하며 보다 높은 기술적 수준을 요구할수록 애매한 직종인 웹 마스터는 설 자리를 잃었고 현재 웹 마스터라는 호칭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대신 웹 기획자나 웹 마케터, 웹 개발자, 웹 디자이너와 같은 신규 업종이 생겨났다. 새로운 직종들의 접두사는 모두 '웹'이다. 때문에 이 직종들에 대한 정의는 아주 간단하다. 웹 기획자는 "웹이라는 환경에서 기획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웹 마케터는 "웹이라는 환경에서 마케팅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웹"은 도대체 뭐지?

"웹은 도대체 뭐지?"라는 질문에 대해 정확히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인터넷의 한 프로토콜로써 브라우저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라고 멋지게 정의해 버릴 수 있지만 그것으로 불충분했다. 하지만 충분한 논의가 없는 상태에서 웹은 급격히 산업화되었고 이미 웹의 사용자와 웹을 통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수억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개념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온 천지에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는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닷컴 버블이 닥쳐왔다.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웹에 기반한 많은 사업자가 도산하거나 파산했고 투자자들은 원금을 회수하기는커녕 쪽박을 차는 경우가 발생했다. 몇년의 암흑기가 흐르는 동안 일부 사람들이 웹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웹 2.0'이라는 횃불이 밝혀졌다. 웹은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주장하며 -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을 점잖게 하는 말이다 - 웹에 기반하여 성공한 사업자들의 성공 신화를 널리 퍼뜨리기 시작했다. 웹은 다시 생명을 얻었다. 그런데 "웹은 도대체 뭐지?"

웹에 대한 정의는 매우 간단하다. 다만 웹은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산업적으로 이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정의가 복잡해진다. 게임 산업에서 이야기하는 웹과 탄광 산업에서 이야기하는 웹은 전혀 다르다. 게임 산업에서 웹은 새로운 게임을 배포하고 가입자를 확보하는 가장 유력한 채널이지만 탄광 산업에서 웹은 탄광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는 웹 페이지 몇 개를 의미할 뿐이다. 게임 산업에서 웹은 모바일, IPTV, 임베디드 디바이스 등 다양한 영역으로 게임 콘텐츠를 확대할 수 있는 멀티 플랫폼이다. 탄광 산업에서 웹은 그런 의미가 없다. 게임 산업에서 웹에 대해 연구하고 개발하는 수 많은 인력이 존재한다. 탄광 산업에서 웹과 관련한 인력은 사업장의 컴퓨터 수리를 함께 하는 사람일 수 있다. 웹과 관련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웹'이라는 큰 개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그보다 훨씬 큰 산업 부문에서 개별성이 있다. 그 개별성 때문에 웹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 10년 전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공통점을 찾기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웹 기획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을 자주 했었는데 가장 난감한 경우가 이런 제목의 강연을 할 때다,

"성공적인 웹 사이트 운영을 위한 노하우"

이런 제목은 매우 매력적이다. 강연을 의뢰하는 기업은 항상 이런 식으로 매력적인 제목을 뽑아서 많은 사람을 모으려고 한다. 그 제목에 반대하며 좀 더 실질적인 제목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온라인 신문 사이트의 구독자 확대를 위한 부가 서비스 기획 방안"

그 러나 이런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너무 구체적이어서 올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제목은 매력적인 것으로 정해지고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모인다. 나는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강연장에 입장해서 인사를 하고 강연을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내 강연은 주제를 잃고 헤매기 시작한다. 강연장에 앉은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석에서 졸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고 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낙서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주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니 이미 강연은 끝장난 것이다. 이런 강연을 몇 번 하고 나면 누구도 다시는 강연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아마 10년 전이라면 애매한 제목의 강연이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그저 웹 마스터라고 개념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직종이 존재했을 무렵엔 이렇게 이야기해도 먹히고 저렇게 이야기해도 먹히는 '일하는 방법'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이야기다. 이미 웹은 충분히 산업화되었고 산업의 개별적 특성에 따라 웹이 적용되는 범위와 형태는 세분화되어 버렸다. 웹 마스터라는 직종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이제 웹은 산업 부문에 따라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웹의 공통적 제어 방법"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은 허구다. 만약 다음과 같은 단어가 포함된 웹과 관련한 강연이나 컨퍼런스가 있다면 절대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

- '모든',  '절대적인', '성공하는', '실패하지 않는', '최신의'


이 즈음이면 웹의 기원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웹의 기원을 알고 싶다면 창안자의 이야기를 듣는 게 바람직하다. 해설서보다 원본을 먼저 보라는 조언을 또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웹(World Wide Web)의 개념을 제안한 사람은 누구인가 검색해 보라. 검색에서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팀 버너스 리라는 이름만 찾았다면 할 수 없다. 하긴 역사는 가장 뛰어났던 사람만 기억하는 법이다. 사람들은 토머스 앨바 에디슨이 1000개가 넘는 특허를 등록했다는 것만 기억하지 그의 특허를 위해 헌신했던 수천 명의 다른 연구자들은 전혀 모르지 않나. 에디슨의 발명 중 대부분은 다른 연구자들이 최초 발견했던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어쨌든 웹의 개념을 최초 제안한 사람은 팀 버너스 리라고 해 두자.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근처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다른 학자들이 소송을 걸었을텐데 아무런 이야기가 없으니 그냥 그렇게 인정하자. 팀 버너스 리가 1990년에 CERN에서 일할 때 웹의 개념을 세우고 그 다음 해인 1991년 유즈넷의 뉴스그룹인 "alt.hypertext"에 웹에 대해 처음 소개한 글은 이런 것이었다. 고리타분한 내용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웹의 근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니 반드시 읽어야 한다.

"n article <6...@cernvax.cern.ch>
I promised to post a short summary  of the WorldWideWeb project.  Mail me with any queries.

                WorldWideWeb - Executive Summary

The WWW project merges the techniques of information retrieval and hypertext to make an easy but powerful global information system.

The project started with the philosophy that much academic information should be freely available to anyone. It aims to allow information sharing within internationally dispersed teams, and the dissemination of information by support groups.

     Reader view

The WWW world consists of documents, and links.  Indexes are special documents   which, rather than being read, may be searched. The result of such a search is another ("virtual") document containing links to the documents found.  A simple protocol ("HTTP") is used to allow a browser program to request a keyword search by a remote information server.

The web contains documents in many formats. Those documents which are hypertext,  (real or virtual) contain links to other documents, or places within documents. All documents, whether real, virtual or indexes, look similar to the reader and are contained within the same addressing scheme.

To follow a link,  a reader clicks with a mouse (or types in a number if he or she has no mouse). To search and index, a reader gives keywords (or other search criteria). These are the only operations  necessary to access the entire world of data.

     Information provider view

The WWW browsers can access many existing data systems via existing protocols (FTP, NNTP) or via HTTP and a gateway. In this way, the critical mass of data is quickly exceeded, and the increasing use of the system by readers and information suppliers encourage each other.

Making a web is as simple as writing a few SGML files which point to your existing data. Making it public involves running the FTP or HTTP daemon, and making at least one link into your web from another. In fact,  any file available by anonymous FTP can be immediately linked into a web. The very small start-up effort is designed to allow small contributions.  At the other end of the scale, large information providers may provide an HTTP server with full text or keyword indexing.

The WWW model gets over the frustrating incompatibilities of data format between suppliers and reader by allowing negotiation of format between a smart browser and a smart server. This should provide a basis for extension into multimedia, and allow those who share application standards to make full use of them across the web.

This summary does not describe the many exciting possibilities opened up by the WWW project, such as efficient document caching. the reduction of redundant out-of-date copies, and the use of knowledge daemons.  There is more information in the online project documentation, including some background on hypertext and many technical notes.

     Try it

A prototype (very alpha test) simple line mode browser is currently available in source form from node  info.cern.ch [currently 128.141.201.74] as

        /pub/WWW/WWWLineMode_0.9.tar.Z.

Also available is a hypertext editor for the NeXT using the NeXTStep graphical user interface, and a skeleton server daemon.

Documentation is readable using www (Plain text of the instalation instructions is included in the tar file!). Document

         http://info.cern.ch/hypertext/WWW/TheProject.html

is as good a place to start as any. Note these coordinates may change with later releases.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Tim Berners-Lee                 Tel:    +41(22)767 3755
WorldWideWeb project            Fax:    +41(22)767 7155
C.E.R.N.                        email:  t...@cernvax.cern.ch
1211 Geneva 23
Switzerland "


이 쉬운 문장을 굳이 번역할 생각은 없다. 이 문장에 대한 번역은 일종의 신성 불가침이다. 팀 버너스 리가 뉴스그룹에 올린 글의 내용은 일종의 종교 창시자가 내린 10계명과 같다. 그가 내린 계명은 모두 이뤄졌다,

- 웹의 콘텐츠는 읽기만 할 게 아니라 검색도 될 것이다 : 구글이 최선봉에서 구현했다
- 여러가지 포맷의 문서가 있을텐데 어쨌든 똑같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브라우저와 OS의 합작으로 해결되었다
- 그냥 클릭만 하면 모든 데이터을 읽을 수 있다 : 물론이다
- 다른 프로토콜(FTP, NNTP)의 데이터도 읽을 수 있다 : 물론이다
- 웹 페이지를 만드는 것도 정말 쉽다 : 매일 수백만 개의 새로운 웹 페이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블로그를 보라!
- 모든 형태의 데이터를 공유하려면 애플리케이션의 표준이 필요하다 : Flex를 보라
- 이게 끝이 아니다 : 나도 안다

그 는 이런 계명 뿐만 아니라 1991년 시점에서 브라우징할 수 있는 알파 버전의 브라우저와 테스트 서버와 테스트 파일까지 공개해 두고 있다. 이런 노력을 했으니 팀 버너스 리는 웹의 창시자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나머지 몇 명은 대충 넘어가도 좋다. 팀 버너스 리의 뜻을 따라 수 많은 사람들이 웹이라는 공간에 뛰어 들어 개발과 개선과 혁신을 거듭했다. 그리고 지금의 웹이 존재하고 있다. 이제 웹의 근본을 알았으니 다시 웹에서 일하는 사람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웹기획자란 무엇인가? 1999년 쯤 이 직종을 처음 들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웹 기획자'라는 표현에 대해 매우 안타까운 느낌이다. 웹을 뭐 어떻게 기획하겠다는 것인가? 웹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인가? 팀 버너스 리의 연구 과제를 이어 받아 웹을 좀 더 개선하려는 사람들인가? 아니다. 현실에서 '웹 기획자'는 '웹 사이트 기획자'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웹 기획자라는 단어에 뭔가 더 큰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착각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하는 일을 뭔가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초창기 웹 기획자라는 단어를 만든 몇몇 개념없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허튼 착각이 계속되는 게 문제일 뿐이다.

웹 기획자는 학술적인 측면에서 천체 물리학자나 상담 심리학자나 해양 생물학자와 비슷한 것이다. 기획자라는 범주에서 '웹'이라는 전문 분야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만약 자신을 '웹 기획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팀 버너스 리처럼 웹이라는 프로토콜이나 시스템에 대해 기획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학원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현재 스스로 '웹 기획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대부분은 '웹 사이트 기획자'다. HTTP 프토토콜로 접근할 수 있는 웹 페이지를 기획하는 사람이다.

<html> 안녕! </html>

이 런 HTML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이면 모두 웹 사이트 기획자다. 저 한 문장을 저장하고 확장자를 html로 바꾼 후 웹 서버에 올리면 바로 웹 페이지가 되기 때문이다. 웹 사이트 기획자는 이런 식으로 HTML을 이해하고 그것을 웹이라는 공간에 노출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웹 사이트에 대한 요구가 더 복잡해지면 더 많은 HTML 코드를 알아야 할 것이다. 스크립트가 들어갈 수도 있고, 데이터 전달 포맷이 들어갈 수도 있고, 플래시와 같은 리치 미디어가 들어갈 수도 있지만 결국 웹 사이트 기획자는 '출력'에 관계된 일을 기획하는 사람이다. 잡지로 치면 레이아웃 기획자다.

그런데 많은 웹 기획자들은 이 정도의 일이 자신이 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웹 기획자들은 웹 사이트에 대한 콘셉트와 형식과 사용자 편의성과 운영에 대한 기획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당신의 정체성은 '웹 콘텐츠 기획자'다. 웹 사이트의 콘셉트와 형식과 편의성과 운영은 '콘텐츠'에 의해 지배받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신은 콘텐츠 기획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도 기획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말이다. 예를 들어 사용자들이 올린 사진 이미지를 조합하여 동일한 취미를 갖는 사람을 친구로 엮어 주는 서비스를 기획하는 웹 기획자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런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는 사람들은 '웹 서비스 기획자'라고 부를 수 있다. 서비스의 개념을 소프트웨어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서비스는 소프트웨어의 일부분으로써 동작하는 서비스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용자들이 참여하여 만족하고 반복 사용하는 웹 페이지 전반을 이야기한다. 웹 서비스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웹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웹 페이지 자체가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웹 서비스 기획자는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그런 결정권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웹 서비스 기획자다. 웹 서비스 기획자는 사용자의 사진 이미지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방법으로 파일 업로드 도구를 직접 개발하도록 기획할 수도 있고, 이미 개발된 모듈을 구매할 수도 있고, 플리커나 네이버와 제휴하여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 선택하는 권한이 있으며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웹 서비스 기획자다.


웹 기획자는 허망한 단어다. 웹에 대한 개념이 산업적으로 너무나 세분화되었기 때문에 이제 웹 기획자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자신이 원하는 바에 의해 웹 사이트 기획자가 될 수도 있고, 웹 콘텐츠 기획자가 될 수도 있고, 웹 서비스 기획자가 될 수도 있다. 각각에 대해 산업이 요구하는 역량와 경험과 지식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어떤 웹 사이트 기획자도 모든 웹 사이트에 대한 기획을 할 수 없다. 이 평범한 진리를 웹 기획을 하려는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웹 사이트든 웹 콘텐츠든 웹 서비스든 우리는 제한된 부분에 대하여 기획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모바일 웹 사이트를 성공적으로 기획한 기획자가 모든 웹 사이트를 성공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가? 게임 웹 콘텐츠를 성공적으로 기획한 기획자가 모든 웹 사이트를 성공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가? 커뮤니티 웹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기획한 기획자가 모든 웹 사이트를 성공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가? 모두 NO라고 대답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왜 항상 '그럴 수도 있다'라고 거짓말하는가?


그렇다면 모든 웹 기획자들은 자신이 성공한 한 분야에 머물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커뮤니티 웹 사이트를 성공적으로 만든 기획자가 상거래 사이트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0%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개념의 혁신"

지 금까지 우리는 어떤 회사에 소속된 '기획자'라는 관점에서 웹 기획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 개념 속에서 웹 기획자는 늘 자기 한계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무엇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누구와 만나든 늘 '회사'와 그 회사의 '목표'에 제약되는 생각과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아는 어떤 기획자는 한 회사에서 10년을 일하고 있다. 그는 매년 회사에서 수 없이 많은 제안을 하지만 늘 회사의 주 수익 모델인 웹 사이트의 기획만 하고 있다. 그의 연봉은 계속 높아지고 있고 회사의 매출은 늘어가고 있지만 그는 오늘도 자신의 기획 역량이 회사 내부에 머물러 있음에 침통해한다. 그는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생각하는 그의 유일한 잘못은 현재의 위치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안정적이며 편안하고 미래가 보장되는 위치를 유지하는 것은 곧 변화하는 미래를 스스로 제거하는 것이다. 그는 웹 기획자로서 변화를 거세하며 변화를 바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웹 기획자가 경쟁의 정글에 스스로 던져 버릴 각오가 있다면 이제부터 자신을 '웹 서비스 디렉터(Web Service Director)'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내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서비스가 있는가? 그 서비스를 어떻게 만들 것이며 얼마의 비용이 필요하며 얼마의 기간이 소요되며 어떤 사람이 있어야 하며 어떻게 성장할 것이며 누구를 만나야 첫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웹 서비스 디렉터의 길을 걸어야 한다. 웹 서비스 디렉터는 자신이 회사이며 자신이 자본이고 자신이 원동력인 1인 기업이다. 영화로 치자면 감독이다. 감독 중에도 독립 영화 감독 쯤 될 것이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웹 기획자라는 애매하고 이런 저런 일에 언제든 얽힐 수 있는 일을 하든 웹 콘텐츠 기획자가 되든 웹 서비스 기획자가 되든 웹 서비스 디렉터가 되든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의 몫이다. 그러나 선택 뒤의 결과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어떤 선택이든 결과는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좀 더 복잡한 일을 하려고 할수록 고통은 깊고 댓가는 값지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웹 서비스 디렉터'를 가장 추천하고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라. 가장 힘들고 어렵고 추천하기 힘든 일을 가장 끝에 이야기하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세상 어디에도 쉽고 빠르게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래 전에 경보 경주를 본 적 있는데 멀쩡한 사람이 그 경주에 끼어들었는데 상위 등수에 들지 못했다. 신체 장애자들은 목숨을 걸고뛰었고 그 사람은 그냥 열심히 뛰었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솝 우화와 같은 이야기다. 세상 어디에도 한 번에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병신들과 함께 뛰는 경주에서 자칭 정상인이라는 자가 일등을 하지 못했다. 당시 그는 한 쪽 다리 뿐인 사람들을 우습게 보았고 심지어 그들과 뛰며 농담도 했다. 문제는 그 경주의 길이가 12km였다는 것이다. 그는 5km부터 뒤지기 시작했고 장애인들은 느리지만 꾸준한 레이스를 펼쳤다. 그는 결국 8km 지점에서 기권을 했다. 경기에 참여한 장애인들은 모두 결승선에 도달했다. 가장 마지막에 도달한 장애인은 11시간이 걸렸다.
SK컴즈(SK communications)는 오는 12월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늦게 포털 엠파스를 네이트닷과 완전히 통합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약간의 변동을 예측할 수 있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의 내용은 SK컴즈의 공식 발표라기 보다는 내부 인사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작성된 것 같다. 기사 내용 중 관계자의 입을 빌어 "미국 법인 철수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 부분은 지켜보면 알 일이지만 그리 신빙성 있는 주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최근 SK컴즈가 게임 개발을 위해 2006년에 설립한 SK imedia를 자회사로 편입시킨 사건이다. 북미 지사 철수와 SK imedia의 자회사 편입 등은 SK텔레콤 혹은 SK 그룹으로부터 SK컴즈의 재정 운영에 대한 압박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몇 개의 게임 개발 스튜디오로 구성된 SK imedia의 자회사 편입은 게임의 자체 개발을 포기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SK imedia의 게임 스튜디오는 유지되며 향후 엠파스 게임의 플랫폼을 이용하여 게임 사업 부문을 강화한다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게임 자체 개발이라는 경영상 부담을 없애 버리려는 시도가 아닐까 한다. 아마도 일부 게임 개발자는 싸이월드의 "3D 미니라이프" 개발팀으로 흡수되고 나머지 게임 스튜디오는 해체될 가능성이 있다. 거시적으로 볼 때 SK 그룹의 시나리오 경영에 따르면 긴축 운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선 기사는 최근 SK컴즈의 경영진과 조직 구조 개편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는데 이 기사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SK컴즈의 플랫폼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오랜 시간 거듭되던 '유무선 통합 플랫픔'이라는 주제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SK브로드밴드로 SK컴즈의 사업 방향이 급선회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플랫폼 전략 또한 SK브로드밴드의 그것에 큰 영향을 받을 듯 하다.

SK컴즈의 전략은 과거에 비해 좀 더 SK 그룹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구조가 되어 가는 듯 하다. 특히 플랫폼 전략에서 SK브로드밴드의 영향을 받게 되고 이에 따라 IPTV와 같은 신규 사업 부문에 대하여 SK컴즈의 콘텐츠 특성화 과제가 제시될 듯 하다. 어쩌면 "IPTV로 보는 싸이월드 사진첩" 서비스가 이미 기획되고 있을 지 모른다.


엠파스와 네이트닷컴의 통합 전략은 해당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지 않는데 최근 엠파스는 네이트닷컴과 중첩되는 몇몇 서비스를 종료한 바 있다. 실제로 엠파스 사이트에 접속할 경우 많은 네이트닷컴 서비스를 볼 수 있는데 엠파스의 사용자 충성도가 예상외로 낮다고 판단할 경우 1~2개월의 시간을 두고 엠파스 브랜드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엠파스 인수 합병 후 기존 엠파스 경영진 대부분이 SK컴즈에서 '제거'된 상황이라 경영진의 의사 결정에 큰 변수는 없을 것으로 예측한다. 다만 시기의 문제와 조직 관리의 문제가 계속 대두되었는데 최근 조직 개편으로 이 결정 - 엠파스 브랜드 포기 -에 좀 더 힘을 받을 환경이 되었다.


SK컴즈의 포털 플랫폼 전략은 과거에 비해 좀 더 SK 그룹 전략의 하위 범주로써 역할이 강화될 것이며 따라서 웹 서비스로써 포털의 서비스가 사용자들에게 독립적인 웹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런 전망에 따르면 포털 서비스 사용자들에게 반드시 불행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기존 싸이월드 미니홈피나 네이트, 엠파스의 서비스가 SK텔레콤 모바일이나 SK브로드밴드를 통해 또 다른 형태로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IPTV를 통해 네이트온의 무료 문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지도 모르니 이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지 모른다.


다만, SK컴즈가 경쟁자인 네이버, 다음, 야후에 비해 웹 서비스의 독립성과 창조성이 다소 떨어질 가능성은 부정하기 힘들다. 망사업자인 SK텔레콤은 모바일 디바이스에 맞는 콘텐츠 개발을 더욱 요구할 것이며 SK브로드밴드 또한 신규 사업에 맞는 콘텐츠 개발과 인터페이스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컴즈는 SK 그룹에서 핵심 사업은 아니니 그에 응당한 평가를 받기는 힘들 것이다.
2008년 11월 4일 새벽 1시. 조금 전에 KBS2의 <시사투나잇> 월요일 방송이 끝났다. KBS 경영진은 오는 17일 프로그램 개편에서 <시사투나잇>을 폐지하고 <시사터치 오늘>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개편하겠다고 했다. 실상 <시사투나잇>을 폐지한다는 말이다. 지난 10월 10일은 <시사투나잇>이 태어난 지 5년 되는 날이었다.





언뜻 보면 이름만 바꾸고 프로그램이 콘셉트나 제작진을 유지한다는 식으로 KBS 경영진은 말하고 있지만 KBS에서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들, 그리고 시청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11월 3일 수십 명의 PD들이 아침 출근 길에 <시사투나잇> 폐지를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했다고 한다. 성명서도 발표했다고 한다.

<사진출처 : 미디어오늘>


정권이 바뀌면 '뭔가' 바뀌는 게 있는 법이다. 군부독재 정권이 끝난 후 오랜 기간 야당이었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다. 두 대통령이 10년 동안 한국에 변화를 가져 왔다. 그리고 10년 만에 다시 야당이 여당이 되었다. 그들이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문제가 있는 것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바로잡음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수구(守舊)가 아니던가.


수구(守舊)가 무엇인가? 옛 것을 그저 지키려는 것을 말한다. 지난 10년 간 한국과 한국민과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변화한 모습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옛 것으로 회귀하려는 것을 말한다.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막고, 민심의 촛불에 저항하고, 규제의 법률을 강화하고, 못 마땅한 저널리즘의 입을 틀어 막고, 공교육을 약화시키며 사교육을 조장하고, 교과서의 공정함 대신 정통성을 위해 교과서를 고치도록 하는 이런 행태를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할 것인가? 그것이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바로잡기라면 그들을 통칭해 이렇게 부를 수 밖에 없다,

수구세력


<시사투나잇>의 실질적 폐지는 수구세력이 자신에 대해 비판하는 세력을 얼마나 두려워하며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수구세력이 바라는 것은 민주주의도 아니고 보수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정적 발전도 아니다. 그저 '과거로 회귀'가 수구세력이 바라는 바다. 그들이 원하는 과거는 "그들이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던 시절"을 말한다. 텔레비전에서 감히 권력자를 비판하지 못하고, 권력자들이 잘못을 해도 몇 번 이야기하고 넘어가던 그런 시절이다. 저널리즘과 비판 정신이 투철한 언론인이 살기 힘들던 그런 시절이다. 수구세력은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그래서 <시사투나잇>과 같은 프로그램은 당연히 사라져야할 목록 1호인 것이다. 왜냐면 <시사투나잇>은 정권을 가진 자든, 권력을 가진 자든, 돈을 가진 자든 가리지 않고 그들의 치부를 끈질기게 밝혀내려는 저널리즘을 구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수구세력은 <시사투나잇>이 노무현 정권 시절 그들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런 비판조차 노무현 정권 비호를 위한 위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시사투나잇>이 너무 질기게 자신들의 치부를 후벼 팠던 사실 뿐이다. 수구세력은 <시사투나잇>을 보며 이를 갈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 놈들 정권만 잡아봐 그냥..."

정권을 잡은 그들은 결국 KBS를 장악하고 <시사투나잇>을 없애 버리려 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보수주의자의 탈을 쓰고 있는 수구세력일 뿐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전통과 구습"의 차이점을 알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전통은 '지켜야 할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좋은 습관이나 양식'을 말한다. 반면 구습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풍습이긴 하지만 계승해서 안되고 없애야 할 것을 말한다.

<시사투나잇>의 저널리즘은 어떠한가? 수구세력은 그들의 저널리즘이 편향적이며 일방적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왜냐면 수구세력은 항상 자신들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시절을 꿈꾸며 사는 존재라 작은 비판에도 민감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수구세력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시사투나잇>은 그것조차 스스로 받아 들이려 노력했다고 이야기한다. 오늘 방송분은 그런 반성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수구세력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비난하는 존재는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구세력은 결코 보수세력이 될 수 없다. 진정한 보수는 개혁 세력과 대화하고 이해하며 타협하여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시사투나잇>의 폐지는 KBS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정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저널리즘과 자정능력을 가질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중대한 질문에 대한 도전이다.

나는 뉴라이트라는 자칭 신흥 보수주의자의 조직이 나올 때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냐?'며 맹비난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뉴라이트 따위는 해체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세상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갈등하며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갈등(藤)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가? 갈등은 파괴적 단어가 결코 아니다.

葛    칡 갈
     등나무 등


칡과 등나무과 서로 얽히듯 복잡하게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것을 '갈등'이라고 한다. 수구세력은 갈등이 위기라고 생각하여 칡과 등나무의 얽힌 것을 모두 끊어 버리려 한다. 그러나 상식적인 사람들은 갈등을 통해 칡과 등나무가 더 단단하게 세상의 기둥을 감싸 받침을 안다. 갈등이 없으면 아름답고 깨끗할 것 같지만 실상 그 사회의 저항력과 생존력과 자기 정화 능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기 마련이다

민주주의의 뿌리는 복잡하게 얽힌 갈등을 통해 더 튼튼해진다


<시사투나잇>은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이런 민주주의의 속성을 잘 이해하는 몇 안되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심지어 요즘에 와서 KBS의 시사 간판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하는 시청자들도 있다. 자정이 가까이 시작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졸린 눈 부비며 <시사투나잇>을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시사투나잇>은 지난 5년 간 시끄럽고 갈등이 많은 한국 사회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며 민주주의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시사 프로그램의 전통성을 잇기 위해 노력해 왔다. KBS가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는 것은 KBS 스스로 저널리즘의 전통성을 포기하는 행위다.


시사투나잇의 시청자로서...

이 글의 마지막은 간절한 읍소로 마무리하고 싶다. 이 읍소가 KBS 경영진일수도 있고, 성명서를 발표한 젊은 PD들일 수도 있고, 그들의 상사인 부장이나 본부장일 수도 있다. 혹은 오직 과거로 회귀하려는 보수세력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정말 간절히 부탁드린다.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는 건 KBS 저널리즘의 보석을 빼서 시궁창에 던져 버리는 행위다. KBS는 공영방송이다. 공영이 무엇인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말 아닌가?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려는 분들의 입장에서 공영의 의미는 지금 이야기하는 것과 많이 다를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시사투나잇> 같은 프로그램이 과거 정권의 이익에 편파적으로 복무했기 때문에 공영에 이바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는 대신 당신들의 요구를 더 받아 들이도록 요구하고 제안하는 게 옳지 않겠나? 그저 개편 시기에 프로그램 개편일 뿐이라며 이름 바꾸는 식으로 어설프게 폐지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 아닌가?

늦은 밤 퇴근하여 자정 뉴스나 봤던 내게 <시사투나잇>은 대한민국의 하루를 정리하여 알려 주는 훌륭한 프로그램이었다. <시사투나잇>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점점 옅어지는 30대 후반의 한 시청자에게 '그래도 당신이 관심가졌을 때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고 알려주던 프로그램이었다. 단신이나 전하는 마감 뉴스보다 몇 개의 꼭지를 심도 깊게 매일 전해 주던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채널이었다. 왜 그 채널을 없애 버리려고 하는가. 더구나 그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그리고 지금도 만들고 있는 KBS의 PD 선후배들도 한결같이 <시사투나잇>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간곡히 부탁드린다. <시사투나잇>을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그리고 몇년 후에도 계속 볼 수 있도록 해 달라. 재방송도 하지 않아 늘 '본방 사수' 밖에 할 수 없는 시청자를 위해,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이해하고 헌신하고 있는 PD와 제작진을 위해, 그리고 정말 중요한 '한국 저널리즘의 전통성'을 위해 <
시사투나잇>을 보존해 달라. 고개 숙여 부탁드린다.


브라우저 크로스오버 테스트

Posted 2008/10/31 03:29
브라우저 크로스오버 테스트(Brower Cross-over test)는 자신의 웹 사이트가 다른 OS나 다른 브라우저에서 제대로 보이고 동작하는 지 실험하는 것을 말한다. 내 블로그나 웹 사이트가 다른 OS와 브라우저에서 제대로 보이기는 하는 걸까? 이것을 간단하게 대신해 주는 웹 사이트가 있다.








http://browsershots.org/

브라우저샷이라는 웹 사이트는 Johann C. Rocholl에 의해 만들어진 스크린샷 제공 서비스인데 자기 블로그의 주소를 입력한 후 몇 분을 대기하면 각종 브라우저에서 자신의 블로그를 어떤 식으로 보여주는 지 스크린샷을 저장하여 보여 준다. 첫 페이지에서 자신의 블로그 주소를 "http://www.domain.com"으로 입력하고 '제출하기' 버튼을 누르면 된다.



아래는 이구아수 블로그에 대한 조사 결과다. 워낙 간단한 인터페이스로 만든 블로그라 다른 OS나 브라우저에서 출력되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http://browsershots.org/http://i-guacu.com/


블로그 뿐만 아니라 일반 웹 사이트도 조회가 가능하다. 과거 크로스브라우징을 테스트하려고 여러 컴퓨터를 이용했던 경험이 있는데 이 웹 사이트를 이용하면 간단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원하는 결과를 찾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모든 브라우저를 체크하지 말고 테스트할 몇몇 브라우저만 체크한 후 제출하는 게 좋을 듯 하다.


이 서비스를 보면 아주 간단하게 구현할 수 있지만 작은 협력이 필요한 프로젝트의 전형과 같다고 생각 한다. 또한 서비스의 콘셉트도 매우 명확하여 비록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기 어렵지만 '분명한 대상'이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서비스다. 오래 살아 남는 웹 서비스는 이런 특징 - 간단하고 쉬운 협업과 명확한 대상 - 을 갖고 있다.

인터넷 허위 매물의 실상

Posted 2008/10/31 03:01
어제 MBC의 <불만제로>를 보니 지난 9월에 고발했던 중고차 허위 매물 사건이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 방영되었다. 현업 중고차 딜러들은 중고차 웹 사이트에 올라 온 매물의 절반 이상이 허위 매물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단지 중고차 웹 사이트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수 많은 가짜 광고가 각종 웹 사이트에서 판 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웹 사이트다. 부동산 웹 사이트에 등록된 매물 중 실거래 금액이 그대로 표시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매매의 경우는 말할 나위 없고 월세 시장의 경우엔 중고차 허위 매물과 같이 '일단 오게 만든 후 다른 집을 소개'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네이버에서 '강남 원룸'이라고 검색하면 수 많은 부동산 업체의 웹 사이트와 중계 거래 웹 사이트가 나타난다.


이들 중 하나를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첫 페이지에 강남 지역의 풀옵션 원룸의 가격과 정보가 나와 있다. 역삼역에서 1분 거리에 있다는 한 19평형 풀옵션(냉장고, 세탁기 등이 기본으로 제공) 원룸이 보증금 100만원에 100만원 월세로 나와 있다. 17평형이 보증금 75만원에 동일한 가격의 월세로 나와 있는 경우도 있다. 19평형의 실평수가 17평이라고 되어 있고 17평형의 실평수는 15평이라고 되어 있다. 가격과 정보 모두 실제와 다르다. 대개의 원룸은 분양 평수 기준으로 실평수가 50~60% 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 분양 면적이 19평이라면 실제 주거 공간의 평수는 12평 정도가 나오면 아주 잘 나오는 경우다.

가격 또한 실제와 20% 가량 차이가 있다. 강남 지역에는 수 많은 원룸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격에 대해 딱 잘라 말하기 힘들고, 계약 조건에 따라 월세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보는 화려한 화면의 원룸이라면 결코 저 가격으로 임대할 수 없다. 보증금을 높이거나 월세를 20% 이상 높여야 입주할 수 있다.


부동산 매물 중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 웹 사이트에서 강남 역삼동의 원룸 월세를 검색했더니 아래와 같은 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이들 가격을 찬찬히 읽어 보면 어떤 것이 허위 매물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위에 있는 매물은 59㎡ (약 17평) 기준으로 보증금 150만원에 월세 150만원으로 나와 있다. 매물 정보를 보니 실평수(전용면적)는 약 12평이다. 이 정도 가격이면 실제 금액에 거의 근접한 매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아래의 매물을 보면 72㎡(약 21평)인 원룸이 보증금 1천 5백만원에 월세 80만원으로 나와 있다. 단순 계산을 해 봐도 이 쪽이 훨씬 싼 원룸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시세와 매우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허위 매물이거나 낮은 가격만큼 뭔가 문제가 있거나.



부동산 웹 사이트의 허위 매물은 최근 몇몇 언론의 고발과 자체 정화 활동으로 인해 허위 매물 비율이 많이 줄어든 편이다. 실제로 지난 8월 강남 지역에 월세를 임대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뒤적여 몇 군데 부동산에 연락을 하고 직접 찾아간 적 있었다. 10여 군데를 찾아갔는데 그들은 거의 대부분 "아 금방 다른 분이 계약했어요"라든가 "그 물건 문제가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다른 상품을 제안했다. 그로 인해 일주일 넘게 헛걸음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통이 치민다. 그러나 지난 10월 초 다시 몇몇 부동산 중계 웹 사이트에 접속했을 때 보증금과 월세가가 과거에 비해 많이 현실화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허위매물이 많았고 설령 허위 매물은 아니더라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금액으로 계약을 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보증금이나 월세를 20~30% 정도 더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은 부동산 사업자들이 허위 매물을 올리는 이유는 <불만제로>에서 보도한 중고차 시장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일단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어떤 식으로든 구워 삶아 다른 물건을 보게 만들 수 있고 그런 사람 중 일부는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허위매물은 중고차 거래 웹 사이트나 부동산 거래 웹 사이트 뿐만 아니라 많은 웹 사이트에서 반복되고 있다. 정직한 정보를 올려 둔 곳에는 구매자들이 클릭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만 그로 인해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정보의 질이 떨어지고 구매자들이 불필요한 비용을 소모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허위 매물을 올려 이익을 취하는 몇몇 업체를 빼고 구매자와 인터넷 사이트 운영사, 정직하게 상거래를 이어가려는 대다수의 업체가 피해를 입게 된다. 정부가 직접 개입을 하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는 과거에도 그랬듯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 PREV : 1 : 2 : 3 : 4 : 5 : ... 25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