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3시, 메가박스 센트럴시티점에서 봤습니다. 스토리는 다 알고 갔으니 그리 궁금한 건 없었고 감정 과잉만 없었으면 하고 갔는데 의외로 건진 것이 많았습니다. 길고 긴 예술적, 기술적 관람평은 다른 블로그 관람기를 참고하시고 저는 짧게 몇 가지 관람 포인트만 짚어 봅니다. 

 

 

 

1. 배우 송강호

 

이번 영화에서 배우 송강호가 보여준 에너지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마치 이 영화를 위해 지난 17년 간 감질나게 이런 저런 캐릭터를 연기한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단언컨데 배우 송강호는 영화 <변호인>을 통해 그의 영화 인생 전체에서 가장 큰 에너지를 집약하여 폭발 시켰고 나는 스크린을 통해 그 에너지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온 몸은 송강호가 내뱉는 대사에 수백개의 구멍이 뚫려 영화관 의자에 피범벅이 되어 널부러져 꿈틀거리는 하찮은 사냥감이 된 것 같았다. 

 

 배우 송강호를 처음 주목한 것은 오래전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투자했던 영화 <반칙왕>이었지만 그에 대한 기대가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나쁘지 않은 연기력을 가진 배우였지만 매력적이지 않았다. 송강호가 아니더라도 주목할 배우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데뷰 후 오랫동안 배우 송강호는 영화 <넘버3>에서 흥분하면 말 더듬으며 지적 무식함을 드러내던 조폭 캐릭터 이상도 이하 아니었다. 그러던 중 배우 송강호는 두 영화를 통해 내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첫번째 영화는 <살인의 추억>이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송강호 본연의 캐릭터와 만날 수 있었다. 그래 바로 저런 캐릭터지. 태어날 때 "야이 육시럴년아 뭐 해처먹는다고 이렇게 늦게 낳아!"라고 소리치고 나왔을 법한 욕쟁이 할멈처럼 뻔뻔한 자기 합리화와 진부하며 구태의연함이 만난 속물적 근성이 자연스러운 그런 캐릭터 말이다. 도대체 저 미친듯한 장면에서 뜬금없는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할만한 배우와 아바타가 송강호 말고 또 있겠는가?

 


 

만약 송강호가 <살인의 추억> 이후 출연작에서 전작과 같은 캐릭터를 맡았다면 나는 더 이상 송강호에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송강호의 차기작은 참으로 다른 것이었다. 그는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에 출연한다. 송강호는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자신이 얼마나 프로페셔널한 배우인지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전작 <살인의 추억>에서 크게 주목받았던 캐릭터를 버리고 그는 권력의 근처에 있었던 소시민의 삶을 묘사한다. 영화의 흥행성적과 관계없이 그의 도전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배우에게는 안타까운 평가지만 대개 영화의 흥행이 엉망일 때 배우에 대한 평가는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효자동 이발사>에서 송강호가 보여준 연기는 그가 배우로써 내면에 충실하다는 확신을 주었다. 나는 그가 각하의 영정 눈알을 긁어내는 장면에서 묘사한 죄송함, 비겁함, 무능함 그리고 이 말도 안되는 짓을 목숨 걸고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의 기가 막힘을 표현한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송강호의 입체적 연기력이 완성된 건 바로 그 시점이 아닌가 싶다. 

 

 송강호가 출연한 여러 영화에서 그가 크게 소리치는 장면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변호인>을 본다면 과거 그가 했던 모든 연기를 잊게 만드는 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부디 그 장면을 한번에 촬영했길 기도했을 정도로 송강호가 쏟아내는 에너지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런 에너지를 쏟아내야 하는 장면이었고, 청년 '변호인'이 최초로 세상의 불의에 정면으로 맞서서 결국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는 시발점이니 그 정도의 몰입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고 노무현 대통령의 1988년 5공화국 비리 청문회 시절을 보면 그가 내뿜는 에너지가 결코 과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배우 송강호에게 감사한 것은 온 몸에 힘을 모아 결코 발성이 어긋나지 않게 대사를 내뱉은 것이다. 과도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 장면에서 그는 현실의 노무현이라면 결코 넘지 않았을 선을 지키며 또한 평생 처음 '정의'와 '대의'를 위해 법정에서 투사가 되었던 그 시절을 묘사했다. 

 

  


 

그리고 나는 문득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검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이쯤되면 저와 한번 해 보겠다는 거죠?"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껍질을 깨고 나와 목숨 걸고 변론을 했던 노무현에게 검찰의 독립성 운운하며 하극상을 거듭하는 검사들이 얼마나 귀엽게 보였을까. 정말 그는 검사들이 귀엽게 보였을 것 같다. 전쟁 세대가 전후세대를 바라보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전후세대가 존경심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걸 비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오래전 노무현 대통령이 검사들과 이야기하던 그 순간을 직접 보며 어리고 싸가지 없고 게다가 개념도 상실한 검사들을 보며 분노에 치를 떨었던 나는 비로소 그 분노를 지울 수 있었다. 그 검사들에게 굳이 문제가 있다면 적이 누군지 제대로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 아닐까. 우둔함은 죄가 아니다.

 

 

 

2. 부산 사투리

 

이 영화에 출연하는 사람의 90%는 부산 경남 사투리를 사용한다. 그런데 송강호와 오달수, 김영애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사투리 구사 능력은 수준 이하였다. 부산 경남 사투리 구현의 최고봉은 영화 <친구>를 통해 입증된 곽경택이다. 곽경택은 부산 경남 지역과 전생에도 관련이 없었을 것 같은 배우조차 완벽하게 사투리를 구사하게 만든다. 심지어 영화 <똥개>에서 정우성까지 완벽한 부산 경남 사투리를 쓰게 만드니 말이다. 부산 토박이로서 영화 몰입도에 사투리 구사 능력은 큰 영향을 끼치는데 이번 영화에서 세 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사투리 구사능력은 다니엘 헤니가 한국어하는 정도였다. 덕분에 주기적으로 영화에 몰입하지 않으며 영화평에 대한 준비를 하게 만들기도 했다. 

 

 

 

 

3. 돼지국밥

 


이 영화를 보면 돼지국밥이 무슨 천상의 음식인걸로 오해할 수도 있다. 안 먹어 봤으면 말을 마...라고 말하기엔 부산돼지국밥의 맛은 좀 그저 그렇다. 돼지 비린 맛에 적응하지 못하면 한 숫가락도 먹지 못한다. 정구지(부추)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도 돼지 특유의 비린맛 때문이다. 나도 부산사람이지만 스무살이 되어서 처음 돼지국밥을 먹었다. 호불호가 확연하게 갈리는 건 홍어 못지않다. 그러니 영화보고 돼지 국밥이 짱이네 이런 소리하는 분 없기 바란다. 아... 당기네...

 

 

 

4. 노무현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고, 잊으려해도 매번 이런 식으로 되살린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잊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영화 보면서 울만큼 울었다.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으련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제 해야할 바를 해야지 않겠나. 불명예가 있으면 반성하겠지만 없는 사실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목숨 걸고 이룬 업적 음해하고 비난하면 제대로 싸워야지 않겠나. 영화 속에서 변론을 맡은 또 다른 '변호인'들은 판결 따위는 의미가 없다며 타협과 협상을 종용하지만 그는 변호하지 않을 것이면 왜 변호인이 되었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그런 그를 다른 변호인들은 오히려 배척하며 미친놈이라고 비난한다. 결국 "재판이 이 꼴이 된 건 모두 당신 탓!"이라고 비난하며 떠나 버린다. 마치 제대로 된 정치하려고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 원칙대로 하자하니 오히려 반대편에 서서 탄핵에 찬성했던 어떤 정치인들을 보는 것 같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짧은 인생 역정은 영화 속에서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늘 그랬던 것 같다. 배운 게 법이고, 법대로 하는 게 정의라 믿어 의심치 않아서 모든 사람들이 해봐야 소용없다고 해도 제 할 바를 했던 게 아닐까. 원칙상 법으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재판정에서 타협과 협상이 아니라 법으로 이야기하는 게 변호인으로서 자신의 유일한 역할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다. 원칙을 의심했던 건 그를 제외한 나머지였을 뿐이다. 

 

 

영화 속에서 결국 그가 세상과 맞선 최초의 이유가 돼지국밥집에서 만난 인연을 버리지 못해서 시작했듯, 우리도 그와 만난 인연을 잊지 못해 세상과 맞서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영화가 혁명이고 영화가 현실이고 영화가 삶인 것 아닌가.

 

 


(1987년 거제도 대우조선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이석규가 사망하자 이상수 등과 함께 사인 규명 작업을 하다가 9월에 제삼자 개입, 장식(葬式) 방해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1990년‘부림사건의 변호인’ 노무현 의원은 ‘부림사건’ 피고인이었던 송병곤씨의 주례를 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 지역 변호사 시절 사무장이었던 장원덕 '법무법인 부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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