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웹 기획자

Posted 2007/10/05 00:28

단짝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두 사람이 짝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 하자면 콤비네이션(combination)이 될텐데 단짝의 이면에서 '서로 마음이 맞다'거나 '조화롭다'는 뉘앙스가 있다.

많은 회사의 웹 서비스 기획자와 만나면서 이들이 항상 완벽한 존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연히 부족한 존재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천재적인 웹 기획자가 있는 회사라고 해서 항상 좋은 웹 서비스를 만들지 못했다. 반면 평범한 상식과 지식으로 웹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회사에서 나름대로 훌륭하게 과업을 수행하는 모습도 자주 발견했다. 이 블로그에서 누차 이야기했듯 창조적 역량이 필요한 웹 기획에서 평범한 웹 기획자는 자주 좌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회사들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나름대로 웹 서비스를 꾸려 간다. 그 이유에 대해 "협업"이라든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함" 혹은 "평범한 사람들의 진정한 힘" 따위를 이유로 말하고 싶지 않다. 실제로 이런 것들 - 협업,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함, 평범한 사람들의 진정한 힘 - 은 무능력하고 창조적 역량이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책임을 떠 넘기기 위해 써 먹는 경우가 너무나 흔하기 때문이다.

웹 기획자의 역량이 천재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며 웹 서비스를 꾸리는 회사의 공통된 특징은 <단짝 웹 기획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회사들은 거의 대부분 짝을 이루는 웹 기획자가 있었다.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 놓으면 다른 한 사람은 조사를 하여 근거를 찾거나, 한 사람이 부정적이면 다른 한 사람은 긍정적이고, 한 사람이 마케팅에 강하면 다른 한 사람은 기술에 강한 식이었다. 대개의 경우 팀장과 팀원 두 명으로 이뤄진 웹 기획자 조직에서 이런 단짝 현상이 자주 발견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십여 명의 웹 기획 조직에서도 주요 과제를 해결하고 실천하는 것은 <단짝 웹 기획자>인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단짝 웹 기획자의 <실천적 합의>였다. 한 웹 서비스 회사의 경우 단짝이라고 불리는 두 사람의 사회적 특징은 너무나 달랐다. 한 사람은 30대 중반의 팀장이었고 업계 경력은 10년 정도에 여성이었으며 잘 알려진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20대 중반의 스탭이었고 업계 경력은 3년 정도에 남성이었으며 지방 전문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성격 또한 매우 달라서 팀장은 조용하고 독서를 즐기며 토론 보다는 이야기를 즐기는 편이었고 스탭은 직설적이며 사람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논쟁적이었다. 두 사람은 심지어 자라난 고향도 완전히 달라서 뭐 하나 같은 걸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수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내가 기억하는 대표적인 단짝 웹 기획자이며 회사의 수 많은 웹 서비스 관련 기획을 훌륭히 소화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실천적 합의>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웹 기획자로서 미래에 대한 지향과 현재에 대한 입장은 완벽히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초기에 많은 갈등이 있었던 것은 뻔하다. 그러나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차이에 대해 인지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하는 일, 즉 회사 웹 사이트에 대한 "웹 기획"이라는 주요 업무에 대해 공감대를 구축하게 된다. 둘의 차이점을 잘 활용한다면 웹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수렴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이 보다 진취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들이 만난 지 1년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우리 둘이 합의할 수 있다면 회사 전체를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짝 웹 기획자는 웹 기획자가 꼭 천재가 아니더라도 훌륭한 웹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도록 한다. XP 프로그래밍에서 이야기하는 "짝 코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물론 서로 매우 비슷한 성격과 지향점을 가진 웹 기획자가 <단짝 웹 기획자>로서 현업의 요구를 훌륭히 소화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것은 혼자서 웹 기획을 하는 사람보다 최소 두 사람이 짝을 이뤄 웹 기획을 하는 회사에서 훨씬 훌륭한 성과를 많이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웹 기획의 과정에서 수 많은 탐구와 토론, 자기 반성이 필요한데 이 과정은 공개적이기 보다는 폐쇄적인 상황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마치 부부 관계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성생활인데 이것은 두 사람만의 은밀한 공간이 필요한 것과 같다. 남의 부부생활에 대해 이런 저런 조언을 해 봐야 결국 남는 것은 더 깊은 불화인 것처럼 경영자나 관리자가 웹 기획자의 은밀하지만 치열한 기획의 과정에 깊이 개입할수록 성과는 볼품없을 뿐이다.

만약 이 글을 웹 서비스를 새롭게 개발하거나 운영하려는 회사의 경영자가 본다면 자기 회사의 웹 서비스 기획자가 단 한 명인 경우 자신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한 사람을 더 뽑아서 짝을 만들어 주면 웹 서비스 기획자는 매우 행복해질 수 있다.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를 한 명 더 뽑는 게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웹 서비스 기획자를 한 명 더 뽑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스스로 그런 역할을 해 보는 것은 어떤가? 분명한 것은 성공한 웹 서비스는 <단짝 웹 기획자>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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